그리스 구제금융 4개월 연장 후폭풍
치프라스 집권 한달만에 공약 수정… 최저임금 인상-공무원 재고용 포기
빈곤층 식량지원 등 자존심은 살려
26일 취임 한 달을 맞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발 빠른 변신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급진좌파 ‘시리자’ 후보로 나선 그는 반(反)긴축정책과 구제금융 폐지를 내걸었지만 취임 후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점차 실용주의로 ‘유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스는 24일 유로그룹으로부터 구제금융 4개월 연장안을 승인받았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제출한 그리스의 구조개혁안에는 급진적인 총선공약들이 대거 수정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리스는 현재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공기업 민영화를 되돌리지 않기로 약속했고, 즉각적인 최저임금 인상과 그동안 구조조정을 당한 공무원 1만 명의 완전 재고용도 포기했다. 그 대신 부유층에 대한 세금 징수 강화, 부패 방지, 노동시장 개혁과 공공부문 임금 시스템 개혁, 공무원 조직 축소, 정부 재산 매각 등을 약속했다. 그리스 개혁안 승인 소식에 유럽과 미국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다.
게오르게 파굴라토스 아테네대 교수는 “치프라스는 첫 한 달간 가치 있는 교훈을 배웠다”며 “그는 좌파적 수사법이 그리스의 빈 현금잔액을 채워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BBC는 이러한 치프라스의 변신에 대해 “집권 한 달 만에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블레어주의자(우파적 개혁을 한 전 영국 노동당 총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한 사회주의자”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치프라스가 탱고(아르헨티나)가 아닌 삼바(브라질)를 추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치프라스가 2002년 반자본주의적 공약으로 집권한 후 친시장 정책을 포용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노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집권 시리자당에서는 “전 정권과 달라진 점이 뭐냐. 배신당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 “치프라스 총리가 국제 채권단과 지지자들의 상반된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어려운 방정식에 직면했다”며 ‘균형 잡기’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시리자의 대표적인 의원인 마놀리스 글레조스(92)는 “그리스 유권자들에게 긴축정책이 폐지되고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 채권단)가 물러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유권자들은 배신자 정부에 항의하고 행동을 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24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정부가 반긴축 기조에서 변질됐다는 세간의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우리는 파트너 국가들과 협상하라고 선출됐다”며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되는 협상을 해야지 단독 행동만 고집하면 그리스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리스 정치분석가 필리프 크리소풀로스는 “치프라스의 또 다른 공약이었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잔류’ 공약이 지켜졌다”며 “치프라스가 유로존 그룹과의 협상을 통해 ‘트로이카’를 ‘기관’으로, ‘각서’를 ‘합의’로 바꿈으로써 그리스인들의 자존심을 살린 것은 작은 업적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번 협상에서 그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관철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식량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푸드 스탬프’와 빈곤 가정에 대한 무료전기 제공사업에 18억 유로를 쓸 예정이다.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그리스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22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이번 협상을 지지한다”는 국민들의 응답이 8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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