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美, 이란과 아주 나쁜 核협상”… 오바마에 ‘독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3시 00분


美상하원 합동연설서 정면 비판
“이란, 北-IS와 별반 다르지 않아”… 홀로코스트-모세 인용 감성에 호소
美의원들 호응… 22차례 기립박수, 오바마 “새 내용-대안없다” 평가절하

“우리 유대인이 홀로코스트 대학살 때처럼 적 앞에서 무능하게 대응하는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습니다!”

3일 오전 미국 워싱턴 의사당 본회의장.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 초청으로 상하원 합동 연설에 나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큰 소리로 외치자 회의장엔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회의장 뒤편에 미국 성조기가 없었다면 이곳이 워싱턴인지,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날 미 의회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43분간의 도발적인 연설을 쏟아내자 워싱턴 정가에는 적지 않은 후폭풍이 불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이날 연설에서 그는 미 정부와 이란의 핵협상을 “아주 나쁜 협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을 북한 및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비교했다. 그는 “이란은 북한처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쫓아내고 저항했다. 이란은 북한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이 IS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둘의 차이라면 IS가 도살용 칼과 노획 무기, 유튜브로 무장하고 있지만 이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폭탄으로 무장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창한 영어 연설로 미국인들의 감성에 호소했다. 그는 회의장 방청석에 있던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유대계 작가인 엘리 위젤(87)을 일으켜 세우더니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이란과의 핵협상을 막아) 유대인에게 다시는 그런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본회의장 한쪽에 있는 선지자 모세의 얼굴 조각을 가리키며 “‘강해져라. 그리고 굳건해라’라는 모세의 가르침을 다시 상기해야 할 순간이다. 미국이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혼자서라도 조국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며 연설을 맺었다.

유대교 집회를 연상케 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에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박수를 쳤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 중 50여 명은 불참했지만 마침 워싱턴에서 이날 폐막된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차총회 관계자들이 방청석에 대거 참석해 빈자리는 없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무려 22번의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미국을 주무르는 유대계의 자신감을 새삼 목격한 미 정치권은 놀란 표정이었다. 공화당 피터 킹 하원의원은 “의정 생활 23년 만에 외국 정상의 연설에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날 트위터에 히브리어까지 써가며 “대단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네타냐후 총리가 비영어권 정상임에도 원어민에 가까운 미국식 영어를 구사한 점도 ‘록 콘서트’ 같은 반응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백악관과 민주당의 반응은 싸늘해 오바마 정권에서 미-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직후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대안을 제시한 게 전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들은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의 노력을 무시한 슬픈 연설”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홀로코스트#오바마#네타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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