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멎은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약 1년간 치열하게 벌어진 내전의 영향으로 화폐 가치는 급락했고 외환보유고도 바닥났다. 상당수의 공장들이 파괴되면서 경제회생의 동력까지 잃은 상태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상황을 놓고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전장(戰場)은 경제’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16일 크림 자치공화국이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병합을 결정하면서 본격화된 내전은 지난달 정부와 반군측이 극적으로 휴전에 합의하면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양측 군대는 여전히 삼엄하게 대치 중이고 경계에선 여전히 포성이 간헐적으로 울리고 있다. 2012년 대규모 보수를 거쳐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식 공항으로 변모했던 도네츠크 공항은 이제 콘크리트 더미와 철골에 뒤덮여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반군측은 병합 1주년을 맞아 16일부터 각종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들은 반군과의 전쟁보다 ‘경제 살리기’가 우크라이나에 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통화인 그리브나 화의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5일부터 기준금리를 기존 19.5%에서 30%로 10.5%포인트 인상했다. 일반적으로 주요 국가들이 0.25% 수준의 미세한 금리 조정을 하는 것과 비교할 때 우크라이나의 다급함이 묻어나는 조치다.
우크라이나의 인플레이션 비율은 공식적으로 28.5%로 추산되지만 WP는 스티브 한케 존스홉킨스 대 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실제 인플레이션 비율이 272%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보다 15.2% 감소했고 외국인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면서 외환보유고는 거의 바닥 수준인 56억 달러에 머물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대외 국가채무는 300억 달러(약 33조9000억 원)로 GDP의 25% 수준이며 갚아야 할 돈이 올해만 110억 달러(약 12조 40000억 원)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의 이런 상황을 감안해 11일 이사회에서 175억 달러(약 19조800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안을 승인했다. IMF는 5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곧바로 지원한데다 세계은행,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유럽투자은행(EIB) 등이 75억 달러를 추가지원할 시사하기도 했다. 모두 합쳐 4년간 250억 달러짜리 경제회생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자금을 빌려준 국가들까지 타격을 입어 유럽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몰고 올 것을 우려한 선제조치다.
IMF의 지원이 당장 급한 불은 끄겠지만 경제 회생은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장 긴축정책에 들어가야 하고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금리도 더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오랜 내전으로 생산시설마저 파괴됐다. WP는 “우크라이나가 비록 경제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성욱 동아대 교수(국제학)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천연가스의 80%가 통과하는 우크라이나는 양측에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결국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며 “그 원인으로 소련 붕괴 이후 25년간 민족 분열을 봉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 창출에 활용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의 무능과 실책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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