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등 英영화 단골 소재 ‘차브’로 보는 영국 문화 코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5일 18시 53분


지난달 11일 개봉 후 14일까지 470만 명을 동원하며 19세 미만 관람불가 외화 사상 최대 흥행기록을 세운 영국 영화 ‘킹스맨’으로 영국 하층계급 ‘차브(Chav)’가 주목받고 있다. 차브는 값싸고 조잡한 옷과 장신구를 걸친 저학력·저소득 젊은이를 일컫는 말로 킹스맨의 주인공 에그시가 전형적 차브다.

차브의 등장 계기는 1979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집권이다. 대처의 민영화 정책으로 광산업 등 제조업 노동자들이 실직하면서 이들이 주로 거주하던 도시 외곽의 임대주택 밀집지역이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폭력과 마약에 노출된 실직자의 자녀가 바로 차브의 모태.

금융위기 후 각국이 앞 다퉈 복지혜택을 줄이면서 차브는 영국의 계급갈등을 증폭시키는 상징이 됐다. 보수층이 “가뜩이나 부족한 복지예산을 게으르고 폭력적인 차브에게 줄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 2008년 영국 중부 듀스버리의 10세 소녀 섀넌 매튜스의 실종은 차브에 대한 보수층의 혐오를 극대화했다. 조사 결과 섀넌의 엄마 캐런이 현상금을 노리고 유괴 자작극을 펼쳤고, 그가 10대 시절부터 5명의 남자와의 사이에 7명의 자녀를 낳은 채 복지수당으로만 살아왔다는 점이 드러났다. 캐런은 8년형을 선고받고 3년을 복역했지만 관대한 판결이란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 대중문화계는 지난 10여 년간 차브를 단골 소재로 사용했다. 거칠고 촌스럽지만 기성세대를 의식하지 않는 당당하고 자유로운 차브의 패션 및 생활태도가 젊은층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영국 언론은 분석한다.

실직한 광부 아들이 유명 발레리노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 뚱뚱한 10대 미혼모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 시트콤 ‘리틀 브리튼(2003~2006)은 차브 열풍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드라마 ’스킨스(2007~2013)‘와 ’미스핏츠(2009~2013)‘도 10대 차브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2012)‘ ’원 플러스 원(2014)‘ 등의 여주인공도 20대 여성 차브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킹스맨을 포함해 차브를 소재로 흥행한 작품은 모두 계급갈등과 빈부격차란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발랄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한국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소위 ’오포세대‘가 스스로를 차브와 동일시하면서 흥행에 탄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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