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 보육시설 아동학대에 발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03시 00분


아이들 끈으로 묶어놓고 울어도 아무도 안돌봐
市담당자 제보받고도 감독소홀… 2개월뒤 생후 9개월 영아 숨져
학대사진 본 시민들 분노 폭발

보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일어났다.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무원이 매뉴얼 핑계를 대 비난 여론이 들끓어 오르고 있다.

지난해 7월 도치기(회木) 현 우쓰노미야(宇都宮) 시에 사는 야마구치(山口) 씨 부부는 출장을 떠나며 생후 9개월 된 딸 에미리(愛美利)를 인근 숙박형 보육시설에 사흘간 맡겼다. 에미리는 보육시설에 온 직후부터 설사를 했고 이틀째에는 38도 이상 고열이 났다. 부모가 데리러 갔을 때는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시설 측은 에미리의 고열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고 의사도 부르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야마구치 씨 부부에게 며칠 뒤 사진 몇 장이 배달됐다. 발신자는 문제의 보육시설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끈으로 묶인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부부는 사진에 나온 아이 중 한 명의 부모에게 연락해 실제 그 보육시설에 애를 맡겼는지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그 후 다른 부모들의 증언도 잇달아 나왔다. 한 아이의 부모는 보육시설에 다녀온 아이의 손톱이 빠졌다며 그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또 다른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마치 동물원을 보는 느낌이었다. (유아들은) 모두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고 울어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쓰노미야 시는 에미리가 숨지기 두 달 전에 ‘아이들이 끈으로 묶여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보육시설 내부자의 고발장을 접수했다. 시 공무원은 보육시설 측에 “현장 감독 하러 간다”고 미리 연락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그러곤 “아무 문제 없다”고 결론지었다.

야마구치 씨 부부는 보육시설 경영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고소했고, 시 공무원에게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달 11일 우쓰노미야 지방재판소에서 열린 1차 구두 변론에서 시 측은 “매뉴얼에 따라 사전 통보를 했다. 강제로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지도감독은 권한이고 의무는 아니다”라고 변론했다.

그러자 비난 여론이 폭발했다. 인터넷에는 아이들이 끈으로 묶여 있는 사진이 퍼졌다. 18일 인터넷 블로그들에는 ‘공무원은 불필요한 것에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그런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보육 행정의 구조적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문제의 보육시설은 일본 정부가 정한 설치기준을 맞추지 못한 비(非)인가 보육시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27만 명의 어린이가 인가 보육시설에, 20만 명은 비인가 보육시설에 다니고 있다. 부모들은 모두 인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만 빈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비인가 보육시설을 이용한다. 메이세이(明星)대 인문학부 복지실천학과 가키우치 구니미쓰(垣內國光) 교수는 18일 보도된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끈으로 묶었다니 이런 학대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보육시설#일본#아동학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