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을 이유로 회사에 1600만 달러(약 18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여성 기업인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양성평등 논쟁에 불을 지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17일 보도했다.
소송의 주인공은 유명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바이어스(KPCB)의 전직 임원 엘런 파오 씨(45·사진).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전기공학을, 하버드대에서 경영학과 법학을 전공한 뒤 기업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5년 이 회사에 입사했다. 똑똑하고 야심 많은 파오 씨는 2011년 연말 고과평가 때 상사로부터 “이보다 뛰어난 주니어 파트너를 본 적이 없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문제가 불거진 시점은 2012년 초. 그보다 실적이 나빴던 남성 동료 3명이 시니어 파트너로 승진했다. 파오 씨는 설명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었고 그와 여성 동료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남성 직원에 대한 처벌도 거부했다. 2012년 5월 파오 씨는 소송을 냈지만 발끈한 회사는 오히려 그를 해고했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재판에서 파오 씨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납득할 수 없는 승진 누락, 연봉 불이익, 각종 성희롱을 겪었고 수차례 시정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그의 업무 능력이 떨어져 해고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혁신과 창의성의 요람’이라는 실리콘밸리의 명성과 달리 이곳의 조직문화가 낙후돼 있는 데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또한 무척 두껍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현재 미 벤처캐피털 업계 임원의 96%가 남성이며 구글 페이스북 애플 트위터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의 남성 직원 비율도 70%가 넘는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 등 유명 여성 기업인들이 잇따라 파오 씨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샌드버그는 이달 5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양성 평등은 남성의 이익을 뺏어 여성에게 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모두 이익을 누리는 ‘윈윈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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