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리콴유 시대, 싱가포르는 어디로 향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3일 16시 53분


올해 8월은 싱가포르 독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경제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타계는 싱가포르 역사는 물론 아시아 개발역사를 마감하는 상징적인 일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리 전 총리는 이미 90년에 현실정치를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싱가포르 정치가 불안해진다거나 국민들이 동요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경제개발과 성장을 위해 엄격한 국민통제를 했던 ‘리콴유 시대’가 막을 내림으로써 싱가포르 사회가 점차 변화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효율’과 ‘청렴’을 쌍두마차로 삼은 리콴유의 극단적 실용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씨앗을 찾은 막스 베버에 맞서 유교적 윤리를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으로 삼은 ‘유교 자본주의’의 기틀이 됐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리콴유의 스승은 공자나 맹자가 아니라 마키아벨리였다.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경외심 중 무엇을 받을 것인지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경외심을 택하라 했던 ‘군주론’에 입각해 그는 반대세력이 아예 뿌리내리지 못하게 발본색원에 나섰다. ‘싱가포르에는 정치는 없고 정책만 있을 뿐’이라는 비아냥을 미화한 표현이 ‘소프트 독재’가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오로지 실적만이 정치적 정당성을 보장하다는 리 전 총리의 권위주의적 발상은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에 대한 불신과 억압을 낳았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는 눈부신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삶의 만족도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2013년 갤럽이 발표한 141개국 국민 대상 미래전망조사에서도 그리스 스페인 아이티와 함께 미래에 대해 가장 비관적인 10개국 안에 들었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2013년 기준 0.478로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다. 싱가포르의 최저생활비는 월 1500달러 안팎이지만 인구의 10%가량은 월 1000달러 미만의 저소득층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싱가포르 탈출과 저출산율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외국으로 빠져나간 싱가포르인인 30만 명에 이른다. 2012년도 여론조사 응답자의 56%는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이민가고 싶다”고 답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1.2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부족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이민을 받아들이다보니 2005년 이후 매년 15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들어와 전체 인구 500만 중 40% 가까이나 된다.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엔 700만 인구 중 절반 이상을 이민자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민의 정치적 참여와 언론 자유 확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은 정치적으로도 표출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WP)은 2011년 총선에서 전체 87석 중 사상 처음으로 6석을 차지했고 2013년 2월 보궐선거에서도 승리해 1석을 더 늘렸다.

반면 집권 인민행동당(PAP)의 지지율은 2001년 75%, 2006년 67%, 2011년 60%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2016년 총선이 싱가포르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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