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기로 결심을 굳힌 계기는 이 기구의 지배구조가 우려했던 것보다 ‘민주화’됐다는 점이다. 당초 중국은 중국이 선임하는 AIIB 경영진이 투자 결정 등을 도맡도록 해 한국, 미국 등으로부터 경영구조가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중국은 한국 등 회원국들이 참가하는 이사회가 AIIB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기획재정부는 27일 브리핑을 통해 “AIIB 지배구조 문제, 개발에 따른 이주 시 보상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이 국제규범을 따를 것이라는 내용이 AIIB 협정문에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AIIB 이사회는 상근이사를 두는 상임체제가 아니라 2, 3개월에 한 번씩 사안이 있을 때마다 모이는 비상임 체제여서 AIIB 사무국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최대 주주인 중국 지분 30%대 중반 될 것”
AIIB는 아시아권 개발도상국에 개발자금을 빌려주고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공사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는 기구다. 이 은행의 투자의사 결정권을 이사회가 갖게 되면 이사회에 참여하는 회원국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커진다. 또 특정 사안에 대해 찬반을 가릴 때 지분뿐 아니라 이사의 수도 감안하기 때문에 한두 개 국가가 투자의 방향을 완전히 좌우하기 어렵다. 다만 송인창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이사회 멤버가 ‘상주’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는 더 진전이 있어야 한다”며 “향후 협상 참여 시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AIIB 참여를 통해 7300억 달러(약 806조 원)로 추산되는 아시아 개발시장에 국내 건설업체 등이 진출할 기회를 확보하는 한편 국제금융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경제적 실익을 최대한 얻어내려면 지분을 많이 확보해 주요 주주로 참여해야 한다. 당초 한국은 중국에 이어 2대 주주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인도, 호주, 영국, 프랑스 등 경제 규모가 큰 역내외 국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한국의 몫은 줄게 됐다.
AIIB 지분은 국내총생산(GDP)을 핵심 기준으로 하면서 국가별 자본금 납입 의사 등을 고려해 정해진다. 아시아태평양 역내국과 유럽 등 역외국 사이의 지분 한도, 소규모 국가에 부여하는 최소 지분 등에 따라 한국의 지분이 결정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GDP 기준으로만 계산하면 5% 전후나 5%를 조금 넘는 수준의 지분을 얻어 중국, 인도, 호주에 이어 4번째 주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한국보다 GDP 규모가 큰 인도나 호주가 납입금을 적게 낼 경우 한국 지분이 상대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 당국자는 최대 주주인 중국의 지분이 30%대 중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국은 애써 ‘태연’, 일본은 ‘당황’
한국이 AIIB에 가입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즉각 반겼다. 반면 미국은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고 일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 재정부는 27일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에서 “중국은 (한국의 가입 신청에 대해) 기존 예정 창립 회원국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될 것”이라며 “순조롭게 통과된다면 한국은 4월 11일 정식으로 예정 창립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환영 입장에 맞춰 중국 관영 언론들은 한국의 참여를 반기는 사설과 논평을 잇달아 내놨다. 관영 신화통신은 27일 “한국이 8개월간의 깊은 고민 끝에 국익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한국의 AIIB 가입은 늦었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려운 균형을 잡은 결정이었다”라고 환영했다.
미국 정부는 겉으로는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제프 래스키 국무부 공보과장은 26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일련의 국가가 최근 AIIB 가입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그들 국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태도는 끝까지 ‘AIIB에 어서 가입하세요’라는 식은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AIIB 지배구조 등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일본 정부는 여전히 참가에 신중하다”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아시아 지역 인프라 시장 경쟁에서 한국에 뒤처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관과 연대하고 있고 민간의 노하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은 “아시아 인프라 시장에서 경쟁하는 라이벌(한국)의 결단으로 일본 정부가 궁지에 몰렸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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