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을 하루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격 회동했다. 유럽연합(EU)과 팽팽한 긴장관계로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양국의 전략적인 협력에 대해 서방이 견제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8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치프라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와 에너지 협력, 차관 제공, 농산물 수입에 대해 논의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9일까지 머물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 등 러시아 지도부와 잇따라 만날 예정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회담 하루 뒤인 9일 IMF에 4억5800만 유로(약 5400억 원)를 갚아야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절박한 처지다. 푸틴 대통령은 그리스에 경제 지원을 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대해 그리스가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전략적 빅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러시아가 그리스에 대해서만 ‘EU 농산물 금수조치’를 일부 풀어 그리스산 딸기, 키위, 복숭아 등 농산물을 수입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그리스 환경에너지장관은 러시아산 가스 가격 할인 방안, 러시아와 터키를 연결하는 가스관을 그리스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가 철도, 가스공사, 항구 등의 국영 자산의 지분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에서 차관을 받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날 정상회담에 대해 러시아가 유로존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그리스를 이용해 EU의 제재를 무력화하려는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채무상환 자금 마련 등의 만만찮은 과제를 떠안은 그리스로서는 러시아의 도움에 구미가 당기겠으나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또 NYT는 러시아가 최근 키프로스와 헝가리, 프랑스 극우세력 등을 도와 세를 불리고 있다면서 “유럽 통합을 해치는 데 이용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이 재정위기 악화로 점점 더 궁지에 몰릴수록 우려가 현실화할 개연성이 크다고 진단했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치프라스 총리가 푸틴의 ‘쓸모 있는 바보(useful idiot)’가 될 위험이 높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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