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연설은 한마디로 그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얼마나 연설문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A4용지 총 8쪽에 이르는 연설문은 매우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곳곳에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배우, 존경하는 퇴역 군인 등을 언급하는 에피소드와 체험을 적절히 녹여 소프트한 감성 터치로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한국 중국 등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위안부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교묘한 말 바꿔치기로 일관했다.
실제로 이번 연설문은 외무성에서 만든 초안을 총리 스스로 수차례 퇴고를 거듭했고, 홍보 전문가의 컨설팅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설시간 40분 시간을 재가며 소리 내어 영어 원고를 읽는 리허설도 수차례 반복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낭독 연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29일 연설 앞부분에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인들 대다수가 가장 좋아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애칭(에이브)과 자신의 이름(아베)이 비슷하다는 것으로 시작했다.
“제 이름이 ‘에이브’는 아니지만 저는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불려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은 농민이나 목수의 아들(링컨)도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일본을 민주주의에 눈뜨게 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청년 시절 미국 문화에 “중독됐었다(intoxicated)”고 표현할 정도로 미국을 좋아했으며 정치인이 된 후에도 미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철강회사에 취직해 뉴욕에서 근무했습니다. 지위와 나이에 관계없이 의견을 내고 바른 의견이라면 주저없이 받아들이는 미국의 문화에 중독된 저는 정치인이 된 후 선배 거물 의원들로부터 건방지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습니다.”
이어 미국 유학 시절 만났던 하숙집 주인까지 언급하며 좌중의 폭소를 끌어냈다.
“제가 미국을 경험한 것은 캘리포니아에서 지냈던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하숙집 주인은 캐서린 델 프랜시아 부인이었습니다. 과부였습니다. 캐서린 부인은 사별한 남편에 대해 늘 ‘(영화배우) 게리 쿠퍼보다 더 잘생겼어’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 국회의사당 청중석엔 저의 아내 아키에(昭惠)가 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히 묻지 못하겠습니다.”
이 하숙집 주인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 사회의 통합을 칭찬할 때에도 언급됐다.
“델 프랜시아 부인의 이탈리아 요리는 세계 최고였습니다. 그녀는 쾌활했고 친절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집에 놀러왔는데 그들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걸 보면서) ‘미국이 대단한 국가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그는 미일 동맹, 경제협력 등 무거운 주제를 거론할 때에도 과거 자신의 체험, 미국 대중스타, 전쟁을 겪은 퇴역 군인 등을 양념처럼 녹였다. 미 의원들은 여러 차례 큰 박수로 화답했다.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으로 4년간 이어졌던 미일 전쟁을 언급할 때에도 미군 희생자가 일본보다 많아 미국으로서는 가장 껄끄러웠던 전투인 이오지마 전투를 직접 언급하되 청중석에 앉아 있던 미 퇴역 군인과 일본 출신의 미 의원을 거론하며 매끄럽게 처리했다.
“지금 이 자리에 로런스 스노든 미 해병대 중장이 앉아 계십니다. 70년 전 2월 23세의 해병대 대위였던 그는 중대를 이끌고 이오지마(硫黃島)에 상륙했습니다. 중장은 이오지마에서 열리는 미일 합동 위령제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또 중장 옆에는 일본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의원이 앉아 있습니다. 신도 의원 할아버지는 이오지마 수비대 사령관으로 그의 용맹한 무용담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인연을) 역사의 기적 말고 다른 무슨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심지어 팝 가수와 노래 가사까지 연설에 등장시켰다. “고교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캐럴 킹의 노래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면서 “우울하거나 곤란할 때….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해. 내가 거기로 갈게. 당신의 밤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내가 밝혀줄게”라며 가사까지 읊었다.
그는 연설을 마무리하며 ‘희망’을 강조했다.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동맹을 ‘희망의 동맹’이라고 부릅시다. 미국과 일본, 힘을 합해 세계를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어 봅시다. 희망의 동맹. 함께라면 분명히 가능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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