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은 역시나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러나 아베의 입에만 매달리는 종속변수적 태도는 이제 그만
한일관계는 ‘회복’이라는 말 대신 ‘관계 재설정’이 어울리는 시대로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포함해… 판 바꿀 선제적 대응이 필요할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은 실망스럽다.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도 없었고, 위안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8월 15일에 나올 ‘아베 담화’의 예고편 같아 불길하다. 그렇지만 이제 그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일은 졸업했으면 싶다. 언제까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
한일관계가 꽉 막힌 지 3년이 다가온다. 한일관계가 냉각되고 한중관계가 밀접해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걱정이 있었다. 만약 한국과 ‘과거사 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이 슬그머니 일본과 화해하거나, 미국이 일본 쪽으로 기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일은 한중보다 이해관계가 더 크고 넓으며 막후 파이프라인도 강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중국의 대두를 견제하고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점점 더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일중관계가 회복되면 한국도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것이니, 한국은 내버려두고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더 공을 들이는 게 낫다는 인식이었다.
중일관계에 대한 전망은 흘려들었다. 그런데 꽤 오래전의 걱정이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베이징과 반둥에서의 두 차례 정상회담으로 험악한 관계를 봉합했다. 양국 관계가 급격히 좋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대결 모드’에서 ‘관리 모드’로 바꾸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런 변화에 중국이 한국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미국의 메시지도 선명해졌다.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미일동맹은 양자 동맹에서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한때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지금의 미일관계는 그때보다도 더 탄탄해졌다. 아베 방문 전 미국 내에서 일었던 비판이나 사과 요구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음도 증명됐다. 양식을 먹는데 김치도 올리라는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이 대목에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일본과 미국, 일본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우리 외교가 실패했다거나 한국이 고립됐다고 비난하는 것은 단견이라는 것이다. 한중과 한미관계가 더 긴밀해졌다고 해서 일본이 한국을 비난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일본은 한국의 중국 접근에 부정적이고, 이를 미일동맹을 다지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중국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괘념할 일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미국 중국 일본은 상황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고 있는데, 한국만 추억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일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일본이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는 희망 섞인 착각에 빠져 있다. 단언하건대 일본은 우리를 만족시킬 만한 해법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올 들어 부쩍 과거사와 그 외의 문제를 분리해서 대처하라는 소위 ‘투 트랙’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일본에 면죄부를 주자는 말이 아니다. 일본에 부정적인 국민 정서까지 정부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는 마지노선도 있다. 그러나 국민 정서에는 책임이 없지만, 정부는 문제를 풀 책임이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지금도 유효한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우리의 주장이 틀려서가 아니라,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랜B가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의 급격한 대두와 이를 경계하는 일본, 새로운 아시아 정책이 필요한 미국과 위상이 올라간 한국 등 과녁과 궁수의 입장이 모두 달라졌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고차방정식이다. 따라서 ‘한일관계의 회복’이라는 말은 더이상 현실적이지 못하다. 한일관계가 나아진다고 해도 앞으로는 ‘관계 재설정’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지금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플랜B를 거론하면 패배주의적, 사대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사실 위에서 해야 한다. 사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계속 아베의 입만 쳐다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왜 일본의 종속변수를 자처하는가. 국익의 관점에서 선제적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아베도 문제지만, 판을 바꿀 고민을 하지 않는 우리가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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