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주춤 中, 깜짝 금리인하… 수출 휘청 美는 强달러 경계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03시 00분


[글로벌 환율전쟁 격화]
20여개국 금리인하-양적완화 경쟁

러시아 태국 호주에 이어 중국이 11일부터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면서 올 초부터 이어진 세계 각국의 ‘돈 풀기’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금리 인하 등 각국의 통화 완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경기 부양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환율 상승을 매개로 수출에 도움을 주는 만큼 사실상 국가 간 ‘통화 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중국과 일본, 유럽이 일제히 금리 인하 또는 양적완화에 돌입한 마당에 최근에는 미국마저 달러화 강세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둘러싸인 한국의 입지만 점점 좁아지는 상황이다.

○ 주요국 일제히 통화 가치 낮추기 경쟁

11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금까지 20여 개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QE) 형식으로 시중에 돈을 풀었다. 일본 유럽 호주 등 선진국부터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 공통된 현상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7%대 성장을 위협받는 중국이 앞으로도 금리를 한두 차례 더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투자은행들도 인도 태국 등 아시아 신흥국들이 유로화나 엔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에는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예고해오던 미국마저 환율 전쟁에 이미 뛰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1분기(1∼3월) 성장률이 0.2% 수준까지 떨어지고, 무역수지 적자가 6년 반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당국이 강(强)달러를 부담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미 제로 수준인 정책금리를 더 낮출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르면 올해 6월로 예상되는 금리 인상 시점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재무부도 최근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 등 경상수지 흑자가 큰 나라를 지목하면서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은 바 있다.

한국은 이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나 홀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올 들어 원화 가치는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가파른 속도로 오르고 있지만 다른 나라처럼 금리를 과감하게 내리면 10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더 빠르게 불어날 위험이 크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환율 정책이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금리 인하나 시장 개입을 통한 대응은 부작용이나 한계가 있는 만큼 내수를 부양하거나 해외 투자를 유도하는 등의 중장기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수출기업은 비명, 자산시장은 불안한 랠리

“엔화 약세로 일본 경기가 살아나 주문은 밀려오는데 영 반갑지가 않습니다. 환율이 너무 떨어져 팔아서 손해나 안 보면 다행이죠.”

일본 조선업체에 기자재와 부품을 파는 수출기업 태원정공은 중국의 금리 인하 소식에 한숨이 늘었다. 그렇지 않아도 엔화 약세로 30∼40%였던 마진율이 5% 밑으로 뚝 떨어졌는데 중국까지 환율 전쟁에 가세하면 중국 기업들에까지 가격 경쟁력에서 치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 회사의 김남규 해외영업팀 대리는 “주문량은 늘었지만 고생해서 물량을 맞춰 수출해도 엔화로 받은 대금을 환전하면 얼마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일본, 유로존 등에 이어 중국까지 환율 전쟁에 뛰어들면서 수출기업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글로벌 교역량 감소와 엔화 약세 등의 여파로 이미 국내 수출기업의 채산성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4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1%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추가 금리 인하는 원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출기업에 더 큰 고통을 안긴 격이 됐다.

수출 감소로 실물경제의 타격이 우려되는 데 반해 금융시장은 글로벌 환율 전쟁을 일단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외에서 풀린 돈이 한국으로 몰려 증시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일 코스피도 나흘 만에 반등에 성공하며 0.57% 오른 2,097.38로 장을 마쳤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돈 풀기 경쟁이 격화될 경우 자산시장의 버블이 커진다는 점이 문제다. 기업들의 주가가 실적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지면 향후 경제에 돌발적인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거품이 꺼지면서 증시가 가파르게 고꾸라질 수 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임수·신민기 기자
#성장#금리인하#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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