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에 손내미는 사우디…美와의 ‘70년 우호관계’ 흔들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2일 17시 27분


70년간 돈독한 우방이었던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란 핵협상, 예멘과 시리아 내전 등 각종 현안에서 미국이 사우디의 숙적인 이란에 기우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사우디는 미국과 거리를 두고 프랑스와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친불원미(親佛遠美)’ 노선을 걷는 모양새이다.

사우디 국왕은 13일부터 열리는 미-걸프만 6개국(GCC) 정상회담을 불과 이틀 앞두고 불참을 통보했다. 이는 양국이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분석했다.

194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에서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정상회담 후 두 나라는 ‘미국은 안보, 사우디는 석유’라는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의 발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2008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등장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전략을 취하며 중동에서 한 발 물러나고, 이 와중에 사우디의 앙숙 이란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중동 각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자 사우디의 불만과 불안은 증폭되기 시작한 것.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 패권, 사우디 정부의 자국 시아파 탄압, 아랍과 페르시아의 자존심 대결 등으로 오랫동안 반목해왔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이란 등 외부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아랍이 굳건한 군사 동맹을 체결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F35 전투기, 무인기(드론) 등 미국산 첨단무기를 대거 사들이겠다는 뜻도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계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오바마 정권은 의회 비준 등을 핑계로 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우디는 요즘 미국과 선을 긋고 프랑스 쪽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살만 국왕은 5일 GCC 정상회담에 서방 정상으로는 처음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했다. 미국과 프랑스는 중동시장의 무기, 항공, 발전소 등 각종 대형사업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이날 올랑드 대통령을 수행한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사우디와 수백억 달러의 개발사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혀 미국의 속을 긁었다. 올랑드는 사우디 방문 하루 전인 4일 카타르를 방문해 70억 달러(약 7조6300억 원)의 라팔 전투기를 판매하고 왔다. 사우디 정치평론가 압둘라 알사마리 씨는 사우디의 친불 노선과 관련, “미국이 사우디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듯 사우디도 미국과의 동맹에 덜 의존하기로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우디의 친불 노선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당연히 싸늘하다. 보수성향 정치주간지 위클리스탠더드의 빌 크리스톨 편집장은 12일 한 방송에 출연해 “사우디 국왕의 갑작스런 방미 취소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이자 미국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단기적으로 흔들려도 장기적으로는 다시 우호관계를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사우디입장에서는 동맹국가 중 미국을 대신할만한 나라가 사실상 전무하고, 각종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에 이골이 난 미국 역시 중동의 경찰국가 역할을 맡아온 사우디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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