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에 ‘집채 바위’ 우르르… 날마다 죽음의 공포와 싸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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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못드는 네팔 르포]

12일 오후 네팔 고르카 주 만드레마을 주민들이 엄홍길휴먼재단의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도중 지진이 발생해 산사태가 
일어나자 황급히 공터로 몸을 피하고 있다. 절벽에는 산사태로 발생한 뿌연 흙먼지가 선명하다. 고르카=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12일 오후 네팔 고르카 주 만드레마을 주민들이 엄홍길휴먼재단의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도중 지진이 발생해 산사태가 일어나자 황급히 공터로 몸을 피하고 있다. 절벽에는 산사태로 발생한 뿌연 흙먼지가 선명하다. 고르카=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고르카=박성진 기자
고르카=박성진 기자
12일 낮 12시 50분경 네팔 만드레마을에서 발끝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깎아놓은 듯한 절벽 사이 공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쌀 콩 식용유 천막 등 구호물품을 받으려고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과 구호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절벽과 절벽 사이 중간지점으로 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아직 네팔은 여진이 계속되니 현장에서는 현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엄홍길 긴급구호대장의 주의사항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동이 일어난 직후 맞은편 절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뿌연 흙먼지 속으로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들이 굴러 떨어졌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던 어린 소녀는 겁에 질린 듯 눈을 감았다. 구호물품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던 한 청년은 쌀 포대를 내동댕이쳤다. 진동이 멈추자 주민들은 오른쪽 귀를 땅에 대고 진동이 계속되는지 살폈다. 여진의 공포였다.

엄홍길휴먼재단,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마을을 찾은 한국인들도 처음으로 지진의 공포를 느꼈다. 집을 떠나 천막 생활을 하던 만드레마을 주민들의 걱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민 랍락 구릉 씨(32)는 “여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매일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니던 학교가 무너져 내렸다는 수스미타 구릉 양(8)은 “하루하루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 잠이 오지 않는다”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자다가도 엄마가 깨워 공터로 데리고 나간다”고 말했다.

4일 네팔에 파견된 대한적십자사 ‘네팔지진 긴급의료단’은 곳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의료지원 및 구호물품 보급에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 산악 지형으로 차량 이동이 불가능한 곳이 많아 구호의 손길이 제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도로 사정이 나은 곳은 집집마다 쌀 콩 등 구호물품이 쌓여 있었지만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구호품을 전달하기 어려웠다.

현지에 있던 대한적십자사 이재승 팀장은 “많은 나라의 구호단체가 들어와 있지만 차량이 갈 수 있는 곳에만 물품을 전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구호물자와 의료지원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동식 의료지원시설을 설치해 오지까지 직접 환자를 찾아가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도 만드레마을, 다딩 주 컬레리마을 등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고 있다. 엄 대장은 “카트만두 시내에서 10시간 가까이 비포장 산악도로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라며 “아직까지 한 번도 구호물품을 받지 못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여진으로 네팔에서만 최소 76명이 숨지고 27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6명과 네팔 군인 2명을 태운 미 해병대 소속 헬기는 이날 네팔 북동부 지역에서 구호활동 도중 실종됐다.

고르카=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집채 바위#여진#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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