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 오바마’ 한수위 국정홍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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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취재노트]

워싱턴=이승헌
워싱턴=이승헌
12일 오전 11시 반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 조지타운대 개스턴 홀. 빈곤 극복을 주제로 열린 ‘가톨릭 복음주의 리더십 회의’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받으며 들어섰다. 이날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연설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문가 2명과 함께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 패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진보 성향의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정부에 비판적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아서 브룩스 소장이 대통령과 나란히 앉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의 시작과 동시에 빈곤 퇴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데 공화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러한 정치적 동기가 있느냐는 것이다. 공화당 등 보수층은 빈곤 퇴치라는 주제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방법론에 들어가면 반대만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보수 성향의 미디어인 폭스뉴스를 거론하며 “그 뉴스를 보면 (각종 폭행 사건 등으로) 당신을 화나게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사람들만 찾는지 모르겠다”며 부자 편향적인 의제 설정 기능을 비판했다.

잠자코 듣던 브룩스 소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대통령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진보 진영은 가난을 극복하려는 보수 진영의 방책들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특히 문제”라고 쏘아댔다. 평소 오바마 대통령이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지나치게 많은 수익을 올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지 않았다. 그는 “보수 진영엔 (늘 가난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라는) 냉소주의가 있다”고 한 뒤 “내가 부자 증세를 추진하려 하자 월가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나를 ‘히틀러’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들에게 좀 적당히 투자해 돈을 챙기라고 말하지 못하면 이런 대화도 그저 쇼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시간 반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 이날 토론회는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미국의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를 재확인한 자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선했던 것은 대통령이 다른 패널들과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 패널로 토론에 참여한 모습이다.

자신의 뜻에 맞는 측근들만 모아 놓고 그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반대자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철학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행위 자체가 고도의 국정 홍보 같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가 빈곤 퇴치만큼은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오바마#패널#국정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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