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방문 英왕세자, IRA정치조직 신페인당수와 만나
귓속말 주고 받으며 “미래 위해 과거사 치유” 공감대 확인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19일 아일랜드 골웨이국립대(NUIG)의 환영 행사장에 들어섰다. 아일랜드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누던 그가 반대편에 서 있던 안경 낀 노신사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순간 주변에선 낮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도 터졌다.
찰스 왕세자의 악수에 이렇게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은 상대가 아일랜드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였기 때문. 신페인당은 영국이 지배한 북아일랜드에서 유혈 독립투쟁을 벌여온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정치조직이다. 찰스 왕세자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작은할아버지도 IRA의 공격에 희생됐다. 당시 애덤스 당수는 IRA의 공격을 옹호해 이후 영국 왕실과는 앙숙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원수의 악수” “역사적 화해의 현장”이라며 두 사람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번 찰스 왕세자의 아일랜드 방문은 영국과 아일랜드 양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찰스 왕세자가 애덤스 당수와 만난다면 1921년 아일랜드가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아일랜드 땅에서 영국 왕실 인사와 신페인당 지도부 인사가 만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12초 동안 길게 악수한 채 머리를 서로 맞대고 귓속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는 영국을 상징하는 찻잔을 왼손에 든 채로 악수했고 애덤스 당수는 찰스 왕세자의 손을 꽉 잡았다. 두 사람은 악수가 끝난 뒤 별실로 이동해 15∼20분간 따로 만났다. 이날 역사적인 만남은 애덤스 당수가 요청해서 성사된 것이라고 아일랜드 언론은 전했다.
회동 이후 애덤스 당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언론에 이렇게 전했다. “1968년 이후 일어난 과거 문제들에 대해 찰스 왕세자와 유감의 감정을 나눴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과거를 치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공감대를 확인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30년간 유혈사태를 벌여왔다. 1922년 영국이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독립은 승인하고 북아일랜드는 계속 지배하기로 하면서 ‘피의 전쟁’이 시작된 것. 아일랜드는 IRA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전체의 독립을 주장하며 틈만 나면 영국을 공격했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37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66세 동갑내기 찰스 왕세자와 애덤스 당수는 비극의 중심에 서 있다. 우선 찰스 왕세자는 IRA의 공격에 의지하던 작은할아버지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을 잃었다. 해군 장교와 인도 총독을 역임한 마운트배튼 경은 1979년 아일랜드 북서부 해안에서 딸과 사위, 외손주 등과 요트를 즐기던 중 요트 엔진에 설치된 폭탄 공격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애덤스 당수는 사건 당시 “마운트배튼 경도 (전장을 지휘하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았다”며 사건을 옹호한 바 있다. 찰스 왕세자는 또 1972년 아일랜드 민간인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아일랜드 시위대 발포사건을 이끈 영국군 공수연대 명예연대장을 지내 아일랜드인의 미움을 샀다.
영국 BBC는 “양국 인사의 만남은 역사적이지만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수출을 의식한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고 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에 5조5000억 원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아일랜드인은 영국에서 5만여 개의 기업을 창업하는 등 양국은 긴밀한 경제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피의 일요일’ 사건 유가족들은 찰스 왕세자의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어 “눈 가리고 아웅 식 정치쇼”라고 비난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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