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31일 새벽. 미 공군 제39 비행중대 소속인 토머스 라퍼티 중위는 F-51D 무스탕 전투기를 몰고 북한군 기지를 폭격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대공포 공격을 받아 기체가 손상됐다. 그는 탈출하는 대신 북한군 기지에 전투기를 충돌시키며 임무를 수행했다. 라퍼티 중위의 생사 여부는 63년이 지나도록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실종자 전단’을 만들어 그의 흔적이라도 찾아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했다.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데이인 25일(현지 시간) 오후 워싱턴 백악관 인근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미군 한국전참전용사협회(US-KWVA)가 주최한 6.25전쟁 참전 미군 용사 추모 행사장엔 라퍼티 중위를 찾는 실종자 전단이 놓여 있었다.
기념공원 곳곳엔 라퍼티 중위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실종 참전용사를 찾는 전단 수십 여장이 있었다. 1950년 12월12일 실종된 로이 바로우 상사, 1952년 1월16일 비행 중 실종된 리처드 맥널티 중위,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에 실종된 도나시아노 듀어트 일병…. 이들 전단에는 ‘가족들이 아직도 (정부의)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등의 문구가 선명했다.
178만여 명의 6·25전쟁 참전 미군 중 실종자는 약 7000여 명. 미군과 참전용사 협회는 주요 추모 행사 때마다 6·25 전쟁 실종자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쟁포로를 위한 빈 의자를 마련해놓고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래리 키너드(86) US-KWVA 회장은 이날 실종자 전단들을 가리키며 “우리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기다릴 것이며 그들의 영웅적 희생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각에서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당혹스럽다. 지금 남북한의 발전상을 비교해보면 이것은 완전히 ‘잊혀진 승리(Forgotten Victory)’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같은 날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메모리얼데이 기념식에서 “한국의 산에서, 베트남의 정글에서, 중동의 사막에서 숨진 영웅들이 있다”며 “전몰 용사들을 기리는 비석들은 우리가 절대 갚을 수 없으면서도 꾸준히 갚으려 노력해야 하는 빚의 표상”이라고 추모했다. 한국에서는 어느덧 ‘잊혀진 전쟁’으로 통하고 있는 6.25 전쟁이 이역만리 미국의 수도에서는 여전히 조명되고 평가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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