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취재노트]“사진도 NO”… 힐러리 취재 숨바꼭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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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플러싱 메도스코로나 공원의 한 대형 연회장에서 1일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장에 참석한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미국 뉴욕 플러싱 메도스코로나 공원의 한 대형 연회장에서 1일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장에 참석한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부형권 특파원
부형권 특파원
“이 장소를 어떻게 아셨죠? 비공개 행사니 건물 밖으로 나가 주세요.”

1일 오후 2시경 미국 뉴욕 퀸스의 플러싱 메도스코로나 공원 안 대형 연회장 ‘테라스 온 더 파크’. 이 지역의 민주당 조지프 크롤리, 그레이스 멍 연방 하원의원이 대선 유력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위해 주최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가 열렸다. 기자가 1층 로비에서 사진을 한 장 찍자 힐러리 캠프의 언론 담당 직원이라는 젊은 여성이 다가오더니 단호하게 “취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유력 인사 100여 명만 참석한 이날 행사는 시간과 장소 모두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후원금 2700달러(약 300만 원) 이상을 내고 사전 허락을 받은 참석자들에게만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요청과 함께 통지됐다.

그래서 그런지 취재진은 기자밖에 없었다. 부슬부슬 가랑비를 맞으며 건물 밖에서 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행사 시작 예정 시간인 2시 반경 힐러리 캠프의 다른 여성 직원이 기자에게 다시 물었다.

“진짜 왜 여기 온 것이냐.”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지 궁금해하는 한국인이 많다.”(기자)

“고맙다. 하지만 오늘 행사는 비공개이고, 취재할 수 없다.”

오후 3시경 순찰차를 타고 온 뉴욕 경찰 3명이 행사장 앞에 도열했다. 그로부터 다시 20분이 흘렀다. ‘왜 이렇게 안 오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검은색 대형 승합차 2대와 승용차 등 서너 대의 차량이 건물 입구 왼쪽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힐러리다’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발걸음을 급히 옮기는데 아까부터 기자를 예의주시하던 ‘힐러리 캠프 경호팀’의 한 관계자가 큰 소리로 “No(안 돼)”라고 외치며 가로막았다. 경찰 1명도 다가와 출입구에서 30m 정도 떨어진 화단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이동해 달라. 경호팀의 요청이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 사건사고 현장의 ‘폴리스라인’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 현장에 도착한 ‘더 차이나 프레스’ 등 중국 기자 3, 4명도 같은 저지를 당하자 화단의 나무 뒤에 숨어서 마치 파파라치처럼 사진취재를 했다.

오후 4시 20분경 취재진이 쫓겨난 건물 앞으로 클린턴 전 장관이 나왔고 곧바로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그는 아직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게 (대선) 전략상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과도한 언론 기피증으로 비칠 수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대선에서 ‘강한 여성’ 이미지로 실패해 이번에 ‘자상한 어머니(할머니) 모델’로 변신했다. 지나치게 언론을 피하는 모습은 도움이 될 게 없다.

그의 모습을 담으려는 기자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한국 기자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는 따뜻한 말을 한마디 건네면 어땠을까. 멀리서 찍은 그의 모습에선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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