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푸틴은 가고 오바마가 온다”…에르도안 12년 독재 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8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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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푸틴’이 가고 ‘터키의 오바마’가 온다.”

7일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터키 언론들이 이 같이 보도했다. ‘터키의 푸틴’이라 불리던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61)의 12년간 독재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터키 국영 TRT 방송에 따르면 개표가 99.94% 진행된 가운데 AKP는 41%를 얻어 전체 550석 가운데 과반 이하인 259석을 얻는 데 그쳤다. AKP가 단독 정부 구성에 실패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공화인민당은 25.1%(132석), 민족운동당은 16.4%(81석), 인민민주당(HDP) 13.1%(79석) 등으로 집계됐다.

AKP의 과반 의석 확보 실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쿠르드계 HDP의 약진이다. 비례대표제인 터키 총선에서는 득표율 10% 이상의 정당에만 의석이 배정된다. AKP는 이 같은 선거 제도로 12년간 단독 정부를 구성해왔지만, HDP가 처음으로 10% 이상 득표하면서 기세가 꺾였다. 쿠르드계는 그간 10%를 얻지 못하면 무효표로 처리될 것을 우려해 무소속으로 출마해왔다.

돌풍을 일으킨 HDP는 인구의 20%(약 1500만 명)인 쿠르드 세력을 기반으로, 대표적 좌파 정당으로 성장했다. 기존 정당이 등한시해온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폭넓게 제기하며 지지기반을 넓혔다. 영국 BBC는 “HDP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언어와 종교를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 민심을 파고들었다”고 전했다.

셀라하틴 데미르타시 HDP 공동대표(42)의 개인적 매력도 통했다. 총선 이후 현지 언론은 “‘터키의 푸틴’이 ‘터키의 오바마’에게 발목이 잡혔다”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데미르타시 대표 간 대결 구도를 부각했다. 변호사 출신인 데미르타시는 여성을 지지하는 자상한 면모로 ‘터키의 오바마’라 불려왔다. BBC는 “데미르타시 공동대표가 대중 스타로써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터키 정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또 이달 5일 터키 내 쿠르드족의 중심 도시인 디야르바크르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HDP 후보를 겨냥한 폭탄 테러도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최근의 불황도 민심이 여당에 등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최근 터키에서는 경제성장률이 2.9%로 주저앉고 실업률이 3년 만에 10%를 웃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 일가의 사치가 자주 구설에 올랐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케말 크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지난해 말 완공된) 대통령궁에 비행기와 메르세데스 승용차, 황금 변기가 있다”며 ‘황금변기’논란을 제기해 성난 민심에 불을 지폈다.

AP통신은 “야권이 모두 연정을 거부하겠다고 밝혀 조기 총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대통령 권한을 크게 확대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 추진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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