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후 도주했던 20대 용의자 체포
해방노예 출신 흑인이 세운 교회 ‘증오범죄’ 가능성… 흑백갈등 새불씨
17일 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의 유서 깊은 흑인교회에서 20대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최소 9명이 숨졌다. CNN은 “범인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렉싱턴카운티 출신 21세 남성 딜런 루프”라며 “찰스턴 경찰이 사건 다음 날 검은색 차량 추적을 통해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범인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찰스턴 경찰에 따르면 8명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병원으로 옮긴 2명 중 1명은 숨졌으며, 9명의 사망자 중 여성은 6명, 남성은 3명이다.
생존자 3명은 범인이 오후 9시경 매주 수요일 성경 공부가 진행되던 이매뉴얼 교회 지하실로 걸어 들어와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고 전했다. 범인은 범행 직후 무장한 채 달아났다. CNN에 따르면 범인은 범행 전 한 시간가량 교회에 머문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곧바로 추적에 나섰으나 18일 오전까지 체포하지 못하자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범인의 얼굴을 공개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다.
조 라일리 찰스턴 시장은 18일 “교회로 걸어 들어와서 신에게 기도하고 있던 사람들을 쏴 죽인 이유는 증오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며 “이번 총격은 도저히 참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짓”이라고 규탄했다. 그레그 멀린 찰스턴 경찰서장은 “내 생애 최악의 밤이자 찰스턴 시에도 끔찍한 비극”이라며 이번 사건을 ‘증오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사회는 올 4월 찰스턴 북쪽 노스찰스턴 시에서 흑인 남성 월터 스콧이 등 뒤에서 쏜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숨진 데 이어 두 달 만에 벌어진 인종 증오 범죄에 경악과 긴장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9명의 희생자 중에는 이매뉴얼 교회의 담임목사인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41)와 그의 여동생도 포함됐다. 핑크니 목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의원(민주당)으로 월터 스콧을 추모하는 밤샘기도회를 주최하는 한편 경관에게 감시카메라 부착을 의무화하는 법안 추진 캠페인을 펼쳐 왔다.
사건이 발생한 이매뉴얼 교회는 흑인 저항운동의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1816년 세워져 199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교회는 미국 내 흑인교단인 아프리카감리감독교단(AME) 소속 교회로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오래됐다. 더욱이 이 교회를 세운 해방노예 출신의 덴마크 베시(1767∼1822)는 1822년 찰스턴에서 흑인 노예 봉기를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처형당했고 교회도 불태워졌다. 하지만 신자들은 지하 신앙생활을 하며 신앙공동체를 유지해 나갔고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72년 2층 목조건물로 재건됐다가 1886년 지진으로 다시 불타자 1891년 고딕양식 석조건물로 지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번 사건 발생 앞뒤 시점에 찰스턴에 머물거나 머물 예정이었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7일 찰스턴에서 선거유세 도중 핑크니 목사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18일 찰스턴에서 선거유세를 펼칠 예정이었으나 사건 발생 직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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