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이 조만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50년 동안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지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한일 관계가 최악의 시기를 탈출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국면에 들어간 건 확실하다.”(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한일 관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22일 양국 정상이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한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일 양국이 실질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경제와 안보, 문화 등 다방면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 “미래 협력 위해선 위안부 문제 해결 시급”
주일 대사를 지낸 오재희 전 외무부 차관은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축행사 교차 참석은 과거사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최대의 과거사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 모색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는 “아베 총리가 8·15 담화를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개개인에게 사죄와 반성을 담은 편지를 써야 한다”며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위안부 할머니와 유족에게 보상금을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공 전 장관은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중물을 제공해야 한다. 명분을 주고 실리를 취하는 ‘외교’를 하자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일본 측 전문가들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아베 총리의 말대로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가 좋은 (한일) 관계를 만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를 위해 위안부 문제를 양국이 서로 양보해 가며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은 일부터 성공시켜야 미래 협력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한일 월드컵은 굉장히 좋은 한일 간 협력틀이었다”며 “작은 것이라도 한일 관계를 가깝게 만들 협력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일 대사를 지낸 권철현 전 세종재단 이사장은 “잘할 수 있는 일부터 성공시켜야 다른 분야에 대한 믿음이 쌓인다”며 “한류(韓流) 부흥 등으로 문화적 접촉을 강화해서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했다. ○ “양국 정상, 진전된 메시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은 용기 있고 현명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좋은 과거는 살리고 나쁜 과거는 극복하자는 진전된 메시지”라고 말했다. 오 전 차관도 “한일 양국이 같이 짐을 내려놓자는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긍정적으로 평했다.
‘차세대를 위한 관계 발전’을 언급한 아베 총리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다만 호사카 교수는 “‘차세대’ 언급은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우리 세대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며 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면 하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도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적극적인 의지는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오코노기 명예교수는 양국 정상의 메시지와 관련해 지금까지의 태도가 바뀐 건 아니라는 평가를 내놨다. 한일 관계 현 상황에 대한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이번에 합의된 건 세계문화유산 등재뿐으로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 계속 협의하자는 것”이라며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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