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베트남전쟁 당시의 ‘네이팜탄 소녀’ 판티낌푹 씨(52·사진)는 22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CNN은 과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들을 다시 찾아내 재조명하는 기획시리즈 ‘되감기(Rewind): 지금 그들은 어디에’의 첫 번째 주자로 티낌푹 씨를 인터뷰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AP통신의 사진기자 닉 웃 씨는 네이팜탄이 투하된 직후 울면서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아홉 살 소녀의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사진은 당시 전 세계 수많은 매체의 1면에 실렸고 전쟁의 참상을 알려 베트남전 종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티낌푹 씨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약 20년 전 남편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했고 지금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던 그 끔찍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이공 북쪽 짱방 마을에 살고 있던 그는 공습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마을 사원에 피신 중이었다. 그러나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폭격이 시작되자 모두들 거리로 뛰쳐나왔다. 네이팜탄이 터지면서 불길이 그의 옷에 옮겨 붙었고 목과 등을 태웠다. 웃 씨는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소녀의 목과 등에 불길이 있는지 몰랐다. 사진을 찍고 난 뒤 곧바로 물을 그녀에게 끼얹어 불을 껐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CNN에 밝혔다.
그는 1년 넘게 병원에 머물며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의 부모는 그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몇 번의 수술로 생명의 위기를 넘기자 이번에는 정신적 고통이 찾아왔다. ‘네이팜탄 소녀’로 기억되는 것이 싫어 사라지거나 죽고 싶었다. 그는 19세에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다. 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삶에 대한 의지도 되살아났다. 아이도 갖고 싶었다. 그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당초 그는 자신이 고통 받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싫어 초상권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소송 끝에 “이 사진이 찍히지 않았더라면 폭격의 참상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이후 유엔 친선대사를 맡아 전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기억을 들려주고 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딴 ‘낌 국제재단’을 만들어 분쟁지역 고아들을 위한 학교와 병원, 주택을 짓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이제는 (사진처럼) 뛰지 않아요.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날아다니죠”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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