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내가 챙긴다”…애정? 간섭? 헬리콥터 형제자매가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5일 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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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SJ 캡쳐
출처 WSJ 캡쳐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사는 크리스 필립 씨(40)는 최근 소개팅 장소에서 우연히 친형을 만났다. 형 제프(46)는 반갑게 동생과 인사한 뒤 자연스레 소개팅 자리에 함께했다. 형의 입담으로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고, 크리스와 상대 여성은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제프 씨는 위치추적 애플리케이션 ‘웨어어바웃’과 가족위치탐지 애플리케이션 ‘라이프 360’을 이용해 동생의 동선을 파악했던 것. 동생 크리스 씨는 “형이 작정하고 그 자리에 나왔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관심의 표현이기에 모른 척 지나갔다”고 했다.

‘헬리콥터 맘’에 이어 최근 ‘헬리콥터 형제·자매’가 뜨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헬리콥터 맘이 자녀가 성인이 된 뒤에도 주변을 맴돌며 직장과 결혼 등에 간섭한다면, 헬리콥터 형제·자매는 뉴미디어를 활용해 동생의 고민과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한다. WSJ는 “이들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위치추적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동생의 모든 것에 간섭한다”며 “성인이 된 뒤 점차 멀어지는 부모와 달리 이들은 뉴미디어를 통로로 동생들을 지배한다”고 전했다.

출처 WSJ 캡쳐
출처 WSJ 캡쳐
미국 뉴저지 주 밀타운에 사는 대학생 릴리안 캐론 씨(20)는 여동생 윌로우(17)의 인스타그램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인스타그램에는 동생의 관심사, 고민, 친구관계는 물론 동선까지 실시간으로 드러난다. 그는 “최근 10대들은 SNS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한다”며 “부모님이 모르는 동생의 모든 것을 나는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뉴미디어에 서툰 부모를 대신해 동생의 ‘멘토(조언자)’를 자처한다. 동생의 고민이 엿보이면 상담을 자처하고 엇나간다 싶으면 잔소리를 하는 식이다. 나쁜 친구와 어울리거나 거짓말을 할 때는 부모에게 은근슬쩍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윌로우는 “언니의 잔소리가 때로 귀찮지만 그 덕분에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된다”며 “무엇보다 애정을 바탕으로 한 간섭이란 걸 알기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헬리콥터 형제·자매는 부모와 똑같은 방식으로 동생을 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모가 학업을 강요하거나 강압적 태도를 보이면 그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푸는 식이다. 심리학자 메드라인 레빈 씨는 “미성년인 경우 부모가 자존감을 해칠 정도로 간섭이 심하진 않은지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도 자연스런 관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진다”고 조언했다. 조나단 카스피 몽클레어주립대 교수는 “성인인 경우엔 ‘내 일은 내가 한다’며 똑부러지게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감과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미국의 연구 결과 헬리콥터 맘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자기절제력이 부족하고 발육이 부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설 기자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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