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아르헨티나가 있는 남미를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삐 풀린 세계 자본주의에 대해 잇달아 매서운 비판을 가했다.
교황은 11일 마지막 방문 국가인 파라과이에서 시민단체 지도자들과 만나 “모든 문화가 경제적 성장과 부의 창출을 필요로 하지만, 정치와 기업 지도자들은 이윤이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도 나눠지도록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CNN이 이날 보도했다. 교황은 “나는 그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돈과 이윤의 제단에 희생되어야 하는 그런 우상숭배적인 경제 모델을 만들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교황은 9일 볼리비아에서의 강론에선 “이 모든 고통과 죽음, 파괴의 이면에는 성 바실리우스(330∼379)가 언급했던 ‘악마의 똥(the dung of the devil)’의 악취가 풍긴다”면서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맹비판했다. 성 바실리우스는 터키 카이사레아의 대주교를 지낸 인물로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부자에게 “당신의 재산을 똥과 같이 여기라”라는 충고의 편지를 보낸 바 있다. 교황은 “돈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이 (세상을) 지배하고 공익을 위한 헌신은 내버려졌다. 자본이 우상이 돼 사람들의 판단을 좌우하고, 탐욕이 전체 사회경제 체제를 주도하게 되면 사회는 망가진다. 돈은 남자와 여자를 노예로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우리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패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부패는 사회의 괴사이며 전염병과 같다”면서 “이는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으며 효과도 결말도 좋지 않다. 지난 세기에 이데올로기로 벌어진 일들을 보라.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독재로 귀결됐다”고 비판했다.
이 발언을 놓고 일부 언론은 “교황이 자본주의를 악마의 똥에 비유했다”고 보도했다. 좌파 진영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교황이 사회주의를 설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황은 11일 “가난한 자에 대한 나의 관심은 기독 신앙의 본질에서 나온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황의 발언은, 그리스와 중국의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미국 정치인들도 경제적으로 ‘좌 클릭’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체제의 총체적 실패와 전통적 가치의 붕괴, 그 와중에 이기적 이권만 챙기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염증으로 공정함과 평등함과 같은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성향은 요한 바오로 2세 등 보수적인 전임 교황들이 공산주의와 소련에 맞서 싸울 것을 역설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미국 가톨릭대의 스티븐 슈넥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상적인 개념과 숫자가 아니라 고향인 아르헨티나에서 경제적 한계선 상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경험한 실제 현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풀이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3개국을 방문한 교황은 볼리비아에서 원주민, 사회운동가 등과 만난 자리에서는 식민시대 가톨릭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중죄를 저질렀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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