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시사讀說]북한은 이란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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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이란 핵협상 타결 후 북한과 이란의 차이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온다.

이란의 핵 보유는 중동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시키고 테러집단의 핵무기 접근 가능성을 높여 세계적 위협이 되지만 북한의 핵 보유는 상대적으로 동북아에 국한된 위협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의 핵 포기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이미 사실상 핵보유국인 반면 이란은 아직 우라늄 농축 단계에 있다. 가진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개발 중인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강온파가 공존하는 이란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북한에는 이란처럼 핵협상을 내부로부터 압박할 만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은 이슬람 신정 국가라고 하지만 그 내부에 자유와 실용을 중시하는 세력이 남아있다. 그 씨앗은 가까이는 1979년 이란 혁명에 의해 쫓겨난 친서구적인 왕조에서 뿌리를 내린 것이고 멀리는 교양과 관용을 존중하는 페르시아 문명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이란 정치권에는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이번 협상을 성사시킨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있다. 호메이니를 잇는 시아파 원리주의자의 지배하에서도 온건파 세력은 말살되지 않았다. 이란의 시아파는 원리주의라 하더라도 아랍 세계에서 기원한 수니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처럼 극악하지 않다. 온건파 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2004년 유럽연합(EU)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착수한 이후 이란인들은 큰 고통을 느꼈다. 온건파는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인 강경파와 달리 점점 더 심해진 경제적 고통을 참지 못했다. “이란 내부의 온건파를 활용해 이란의 안보 이익을 존중하면서 이란을 설득해야 한다”는 협상론은 거기서 근거를 찾았고 그 주장이 옳았음이 이번에 입증됐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자유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 왕조에서 바로 일본 식민 지배로 넘어갔고 다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소련 공산당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어렵게 싹을 틔운 일부 자유주의 세력은 대거 월남해버렸다. 이란과 비교해보면 북한을 한편으로 경제제재로 압박을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여 핵 문제를 푸는 것이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동독 시위는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됐다. 라이프치히의 월요 시위는 이른바 ‘교양시민층’이라고 불리는 작가 교사 등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라이프치히대학을 나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런 부류였다. 동독 공산당도 비밀경찰 슈타지도 그들의 삶에서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연유한 인간 기본권 존중의 기풍을 지울 수 없었다.

자유의 기억이 없는 북한

북한은 이란처럼 호메이니 혁명 전의 친서구적인 시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동독처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북쪽은 조선의 왕, 총독이 대리한 일본 덴노(天皇), 그리고 김씨 1, 2, 3세를 섬긴 기억밖에 없다. 북한은 헤겔식으로 말하면 계속 한 사람의 자유만 존재한 곳이다. 북한은 이란도 독일도 아니다. 북한과의 핵협상도 북한과의 통일과정도 매우 다른 경로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란#핵협상#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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