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집단자위권 중의원 본회의 통과… 시민들은 국회앞 반대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7일 03시 00분


“전쟁악몽 되풀이 안돼” 주부-교사-회사원 빗속에도 참가
아베 “전쟁예방에 꼭 필요한 법안”… 野 “강행처리, 민주주의에 큰 오점”

일본 중의원 본회의가 위헌 논란에 휩싸인 집단자위권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던 16일 오후 1시 도쿄(東京) 나가타(永田) 정 일본 국회 정문 앞. 전날 밤 시민 6만 명이 집단자위권 행사 등 11개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이날도 1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태풍 낭카의 영향으로 잔뜩 찌푸린 날씨였지만 시민들이 들고 온 현수막과 피켓에는 ‘전쟁법안은 파시즘의 길’, ‘아베 정권 타도하자’는 등의 주장이 선명했다. 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나온 29세 엄마는 “이 아이의 미래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홋카이도에서 왔다는 53세 고교 교사는 “제자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싶지 않다”며 분노했다. 80세 노인은 “1945년 사촌이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출격해 오키나와에서 미 함정에 돌진해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는 중국과의 전쟁에 3차례 참가해 아시아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 그런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후 1시 40분. 안보법안 통과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위대 일부가 국회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로 돌진하면서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와베 후미토(諏訪部史人·56) 변호사는 “일본을 다시 전쟁하는 나라로 만들려는 시도를 지금 막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는 국회 안에서 무시됐다. 야당은 무기력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가 단상에 나가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큰 오점”이라고 비판 연설을 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동료 의원과 웃으며 농담을 했고 이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오후 2시 15분경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은 찬성 다수로 법안을 가결했다. 민주 유신 공산 사민 생활당 등 5개 야당 의원들이 표결 직전 퇴장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기립 표결이 이뤄졌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이 가결을 선포하자 의석에 앉아있던 아베 총리는 박수를 친 뒤 활짝 웃으며 자민당 의원들과 악수를 했다. 아베 총리는 기자들에게 “일본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전쟁을 미연에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집단자위권 법제화는 ‘9분 능선’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 관문인 참의원(상원) 통과도 확실시돼 ‘전수방위’(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를 근간으로 해온 일본의 전후 안보체제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됐다. 자위대는 세계 곳곳에 존재감을 드러내게 됐다.

일본 변호사연합회와 펜클럽 등 각 단체에서 항의 결의와 성명을 발표했지만 대다수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거뜬히 3년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항마가 없는 데다 1년마다 총리가 바뀌었던 민주당 정권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여론이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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