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과 쿠바의 외교 중재에 적극 나섰던 에밀 슈타델호퍼 쿠바 주재 스위스대사(오른쪽)가 한 모임에서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포린폴리시 웹사이트
‘미국과 쿠바 간 역사적 화해 뒤에는 냉전 시절 충돌을 막은 스위스의 공이 컸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3일 스위스 외교부에서 입수한 외교문건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스위스가 적극적 중재로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갈 뻔했던 위기를 여러 번 넘기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쿠바와의 단교를 한 해 앞두고 스위스에 이익보호국(protecting power)이 돼 줄 것을 요청했다. 이익보호국은 분쟁 또는 외교관계 단절 시 당사국의 이익을 보호할 임무를 위탁받은 제3국. 당시 미국이 우방 영국 대신에 스위스를 택한 것은 보불전쟁(1870∼1871년) 시절부터 오랜 이익보호국 경험이 있는 스위스의 외교사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단교 시절이던 1964년 쿠바 정부가 수도 아바나 주재 7층 미대사관 건물을 일방적으로 압류해 해양수산부 건물로 쓰려 하자 스위스는 미국의 ‘이익보호국’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에밀 슈타델호퍼 쿠바 주재 스위스대사가 직접 나서 미대사관 정문을 걸어 잠그고 “이 건물을 강제로 가져가는 것은 명백한 빈 협약 위반이다. 내 시신을 밟고 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며 쿠바의 강제 압류를 막아냈다. 그 후 쿠바는 더이상 미대사관 건물에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무사히 종결되는 데도 스위스의 역할이 돋보였다. 미국은 당시 소련이 약속한 쿠바 내 공격용 무기 철수가 약속대로 이행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쿠바 상공에 정찰비행을 시도하려 했지만 쿠바 측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불과 1년 전 피그스 만 상륙작전을 통해 피델 카스트로 정권 축출에 나섰던 미국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양국이 충돌 위기로 치닫던 상황에서 딘 러스크 당시 미 국무장관은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친분이 두터운 슈타델호퍼 쿠바 주재 스위스대사를 급히 찾았다. 그를 통해 미국은 “평화적 정찰 임무만 수행하겠다”는 확약 메시지를 카스트로에게 전달했고 이후 미국은 정찰 비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1965년 쿠바 난민들이 미국으로 구름처럼 몰려들던 때 침몰 위험이 큰 선박 대신 하루 두 편의 임시 항공편을 마련해 난민들이 무사히 미국에 정착하도록 한 것도 스위스의 중재 노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공에 대해 스위스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미국과 쿠바 간 국교 정상화로 워싱턴 주재 스위스대사관은 최근 이익보호국 업무를 종료했다. 관련 간판을 떼어내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그동안의 중재 업적도 알리자는 일부 스위스 언론의 제안이 있었지만 스위스 외교 당국은 이를 고사했다고 한다.
포린폴리시는 “물밑 중재로 적지 않은 공을 세운 스위스 외교의 또 다른 진면모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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