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의 독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15년 집권 체제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독재와 인권탄압이 자행되면서 정치적으로 퇴행했다는 것이다.
NYT는 9일 “여름의 모스크바 거리는 현재 ‘철권(Iron Fist) 아래서 춤추는 모습’과 같다”며 “겉으로는 유럽의 수도처럼 우아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인 상황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러시아에서 가해지는 각종 억압을 소개했다. 대통령 직속 연방수사위원회(ICRF)는 최근 헌법에서 국제 인권 원칙을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4일 “러시아 헌법에 어긋날 경우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가 2000년대 중반 석유기업 ‘유코스’를 강제 수용하면서 손해를 본 주주들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ECHR에서 얻어낸 손해배상금 19억 유로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이었다.
또 ‘강한 러시아 부활’을 외치는 푸틴 대통령은 교과서 장악과 검열에도 손을 뻗쳤다. 이는 독재자의 전횡으로 비친다. 러시아 교육부는 올 초부터 교과서 검열을 시행해 교과서의 절반가량을 “친정부적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폐간했다. ‘백설공주’ 등 서구 인기 만화 캐릭터를 사용해 가르친 수학 교과서는 “애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출판이 금지됐다. 러시아 중남부 스베르들롭스크 지방정부는 “러시아 군인을 부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며 영국 역사학자가 쓴 교재를 없애도록 각 학교에 명령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유도 친구’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가 회장으로 있는 출판사 ‘인라이튼먼트’를 적극 밀어줘 교과서 시장의 60∼70%가량을 장악하게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푸틴의 러시아는 점점 ‘이데올로기 국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올 5월 국제인권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에 재갈을 물리는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에 관한 법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라 러시아 검찰청은 지난달 28일 미국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러시아 지부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러시아에서 20년 넘게 교육증진 사업에 2000억 원가량의 장려금을 지원했던 미국 NGO인 ‘맥아더 재단’은 22일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모스크바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BBC가 전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배어 나온다.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의 몇몇 교수는 자유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 올해 5개월 동안 러시아를 떠나 이스라엘로 이민 간 사람은 지난해보다 70% 늘었다. 러시아 고등경제대 사회학 교수인 류보프 보루스야크는 “하버드대에서 유학하는 내 아들도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 집권 15년 동안 사회적, 경제적 변화도 크게 일어났다.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최근 근거리무선통신망인 와이파이가 개통됐으며, 시내 공원에서는 무료 탱고 강습도 열리고 있다. 우버 택시는 옛 소련 시절부터 사용했던 낡은 택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근로자 평균 임금이 3배 올랐다. 러시아 국민은 과거에는 저녁 먹을거리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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