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성매매, 범죄 아니다” 의결… 여성단체 거센 반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대의원 총회 비공개 표결로 통과

‘성매매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범죄행위인가, 자율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합법적 노동인가.’

국제적 명성의 인권단체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가 이 오랜 논쟁에서 11일 ‘성매매는 범죄가 아니다’에 손을 들어줬다. 앰네스티는 이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대의원 총회에서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해서는 안 되며 성매매 당사자, 알선업자 등 관계자 모두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정책 방안을 비공개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구체적인 찬반 투표 결과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대의원 총회에는 60개국, 400명의 대의원이 참석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국제적 인권단체가 총대를 메고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논란이 거세지만 앰네스티 측은 이번 결정이 쉽게 내려진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해서는 처벌이 아닌 보호가 절실하다는 논리다. 앰네스티는 성매매를 단속할수록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성 산업만 음성화될 뿐이라는 문제 제기에 따라 2년여간 심도 있는 현장 조사 및 논의를 벌였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성매매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고 ‘처벌하지 않는 것(decriminalize)’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성매매를 하는 이들은 △무차별적 사법 당국의 체포나 공권력 남용 △업주의 감금 및 협박 △물리적 폭력 및 성폭력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이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는 대신 당당히 당국의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릴 셰티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성 노동자들은 지구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 중 하나로 차별과 폭력, 학대의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며 “앰네스티는 강제 노동과 인신매매에는 여전히 반대”라고 했다.

앰네스티는 이번 표결 결과를 반영한 정책안 문구를 수개월 내로 최종 조율해 공표할 예정이다. 단, 해당국 정부에 성매매 합법화 등을 권유하는 식의 대대적인 캠페인은 벌이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라 비미시 앰네스티 대의원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각 국가에 나가 있는 앰네스티 지부에 자체 결정권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도 12일 통화에서 “앰네스티의 입장은 하나이지만 현지 사정에 맞게 주제별 캠페인은 지부별로 선택이 가능하다”며 “아직 한국지부의 입장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노벨평화상(1977년), 유엔인권상(1978년)까지 수상한 국제인권단체가 성매매에 면죄부를 주는 방침을 내자 세계 여성단체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은 11일 표결 전부터 케이트 윈즐릿, 메릴 스트립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를 포함한 8500명이 서명한 공개서한에서 “궁극적으로 성매매 조직을 보호하는 조치이자 앰네스티 명성에 먹칠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은 “성매매 여성들이 자유롭게 직업을 택해 행복하게 일한다는 건 신화일 뿐이다. 벌써부터 포주와 성매수자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엠네스티#성매매#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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