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학살 사건’ 다큐로 연출한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16시 43분


학살 사건으로 형을 잃은 희생자의 유족이 학살 가담자들을 찾아간다. 대면의 순간은 당혹감과 분노, 두려움, 고통을 낳는다. 대면해야 하는 대상은 지역 유지, 정부의 주요 인사, 이웃 주민, 심지어는 아끼고 존경하던 친척까지 포함한다.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은 지난해 개봉했던 ‘액트 오브 킬링’과 쌍을 이루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1965년 약 1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던 학살 사건을 다룬다. 학살의 발단은 1965년 ‘9·30사태’다. 당시 군부와 대척하던 공산세력이 군부 장성 6명을 살해하고 정변을 일으키자 훗날 대통령에 오르는 수하르토가 중심이 된 군부가 이를 응징하며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군부는 조직폭력배나 깡패들에게도 민방위군 권한을 부여해 전위대로 이용했고, 일반 시민을 포함해 전국에서 약 100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침묵의 시선’은 당시 학살 사건으로 형 람리를 잃은 아디가 형을 죽인 가해자들을 찾아가 대면하는 순간을 담았다. ‘액트…’는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자랑하기 위해 당시 일을 영화로 제작하는 과정을 담아 가해자들이 얼마나 당시 사건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침묵의 시선’은 그런 왜곡과 은폐로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액트…’는 2013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분 관객상을 비롯해 70여 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영화상 최고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침묵의 시선’은 2014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포함해 5관왕에 오르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41)을 27일 서울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디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계기로 ‘침묵의 시선’을 찍게 됐는지 궁금하다.

“2003년 학살 사건을 다루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디를 포함해 당시 학살 사건의 생존자와 희생자들의 가족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3주 만에 군의 위협을 받고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아디와 아디의 가족들은 내가 포기하지 않길 바랐고, 특히 가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길 원했다. 가해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너무나 쉽게 자신들의 경험을 말하고, 자랑스럽게 재연해보이기까지 한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그 뒤로 2년 동안 만날 수 있는 가해자들을 모두 만나 인터뷰했고, 그 과정에서 ‘액트 오브 킬링’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안와르 콩고도 만났다.”

-영화에는 아디의 형 람리를 실제로 살해한 직접적인 가해자들도 등장한다. 역시 2003~2005년에 찍은 영상인가.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는 그들이 람리를 죽인 이들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들을 인터뷰하는 도중에 그들이 죽인 사람이 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말했고, 그들은 즐겁게 당시 사건을 재연해보이고, 학살 장소에서 기념 촬영까지 한다.”

-영화에는 아디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가해자들을 만날 결심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데.

“안와르 콩고와 5년 동안 ‘액트…’를 찍는 동안 당시 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층이 이 프로젝트를 불편해 했고 나는 결국 인도네시아를 떠나야 했다. 2012년에야 다시 입국할 수 있었는데, 그때 아디가 내게 가해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촬영했던 가해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지난 7년 동안 반복해서 봤고, 그것이 나를 바꿔놓았다’고 했다.”

-굉장히 위험한 시도였을 것 같다.

“아디가 그 제안을 하자마자 나는 ‘안 된다’고 답했다. 가해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아디가 내게 자신이 찍은 아버지의 영상을 보여줬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장면인데, 아버지가 자신의 방 안에서 공포에 질린 채 도와달라며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아디는 ‘형의 죽음은 우리 가족을 파괴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너무 많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공포 속에 갇혀 있다. 나의 가족이나 아이들이 이 두려움 속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영화에서 가해자들은 아디에게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협하고 협박하는데.

“촬영을 시작하며 아디에게 그가 원하는 사과를 받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었다. ‘액트…’의 말미에 안와르 콩고가 죄책감에 구역질을 하며 죄를 인정하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는 그 뒤에도 여전히 ‘어쩔 수 없었다’며 잘못을 부인하곤 했다. ‘침묵의 시선’에 등장하는 가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나는 아디가 가해자들을 만나 ‘당신이 내 형을 죽였다’고 말할 때 그들 얼굴 위로 떠오르는 복잡한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괴물이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통해 진실과 화해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학살을 자행한 부대를 이끌던 사령관(아마르 시아한)을 만나는 장면에서 아디의 말에 사령관이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며 ‘자네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보통 카메라 2대로 대면 장면을 촬영하는데 그 때는 카메라를 한 대만 가져가야 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망칠 가능성도 염두에 뒀던 것이다.”

-영화에는 아디의 삼촌 역시 람리가 갇혔던 감옥의 간수로 학살에 관여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촬영 전까지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디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삼촌이었고, 그날은 안경사인 아디가 그저 안경을 맞춰주러 방문한 거였다. 마주앉아 형 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삼촌이 당시 감옥의 간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디가 형을 왜 돕지 않았는지 추궁하자 삼촌은 ‘나는 간수로 감옥을 지키기만 했지 사람들을 죽인 적은 없다. 과거를 자꾸 들추면 네가 위험해질 것’이라며 발뺌한다. 학살자들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대면의 마지막에 아디와 삼촌이 침묵하는 가운데 카메라만이 둘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데, 오가는 대화는 없지만 그들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침묵의 시선’은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보통 인권 다큐멘터리는 여러 피해자 가족을 소개하며, 마치 창문을 통해 보듯 피해자의 경험과 관객이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한다. 이렇게 그들의 경험을 추상화하는 대신 관객들이 이 경험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아디와 아디의 가족에게 최대한 집중한 이유다.

모든 나라에는 폭력의 역사가 있다. 나는 영화를 촬영하며 독일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뒤에도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거나,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해 식민 지배를 자행하고 있는 상황 같다고 느끼곤 했다. 가해자들은 늘 폭력의 역사를 미화하려 하고, 또 잊어버리라는 압력을 가한다. ‘침묵의 시선’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것, 과거를 덮어버리는 침묵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역시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졌던 경험이 있다.

“‘액트…’ 홍보 행사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식민 지배 당시의 과오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자신들의 원폭 피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일본의 문제다. 일본인들이 스스로 돌아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역사에 대해 능통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한국은 한국의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로도 제주 4·3사건 등 비극이 많지 않았나.”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 모두 인도네시아에서 상영됐다. 무엇이 바뀌었나.

“‘액트 오브 킬링’은 비밀리에 상영을 시작했지만 결국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상영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덕분에 ‘침묵의 시선’은 지난해 11월 개봉 당시부터 큰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상영 3주 만에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봤고 여러 언론에서 ‘올해의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군과 경찰의 협박으로 상영이 취소되는 사태가 여러 번 벌어졌고, 검열을 당해 상영이 아예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시 사건이 범죄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미국 상원에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진 학살에 대한 문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현재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헤이그에서 당시 학살의 증거를 모으고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 규명하는 과정도 진행되고 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무엇을 남기길 바라는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자기 자신이 아디이거나 혹은 아디의 가족이라고 느끼길 바랐다. 이런 경험을 통해 두려움 속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길 바랐다. 누구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두려움 때문에 부당한 일에 대해 발언하길 주저할 수 있다. 그런 순간에 과거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말하고 표현할 때까지 과거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5-08-28 06:55:54

    미안하지만 빨.갱이는 인권이 없다. 빨.갱이들 끼리도 인권 존중하지 않는다.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침묵의 시선’은 끔찍하고 추악한 학살 사건의 기억과 대비되는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상미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엣나인필름 제공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액트 오브 킬링 스틸.

다음
이전
1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