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5시간 근무제 없애자” 佛 좌파 경제장관의 반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1일 03시 00분


마크롱, 사회당 핵심정책 건드려 “적게 일하면 더 잘산다는 생각 잘못”
국민여론도 “폐지 찬성” 75%… 사회당 내부 “좌파 역사 모독” 발칵

글로벌 투자은행원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37·사진)이 프랑스 좌파의 상징적인 정책인 ‘주(週) 35시간 근무제’ 철폐를 들고 나와 프랑스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마크롱 장관은 27일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모임에서 주 35시간 근무제 철폐를 언급하며 “오래전에 좌파는 기업에 반대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살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5년 동안 좌파의 핵심 정책이었던 ‘주 35시간 근무제’는 프랑스 정치인들에게는 일종의 건드려서는 안 될 ‘터부(금기)’이기에 여기에 도전하는 그의 발언에 후폭풍이 크다.

‘주 35시간 근무제’란 2000년 좌우 동거정부 시절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조금 덜 일하면 모두가 일할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도입한 법안이다. 법정 주당 근무시간을 기존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며 초과 근무시간에 대해선 시급의 25∼50%를 지급하거나 유급 대체휴가를 주는 것이다. 이 법안이 도입된 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기존 5주의 유급 정기휴가에 더해 평균 3주일을 더 쉬었다.

하지만 프랑스 안에서조차 이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확대를 막고,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경직된 법안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기업들은 임금을 깎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이 줄어들자 각종 변형 근로제를 도입한 편법 운영에서부터 자동화시설을 도입해 인건비 절감을 시도했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도 늘었다. 노동자를 위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실업률도 법안이 발효된 직후인 2001년부터 악화됐다. 당시 9%대였던 프랑스 실업률은 현재 10.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현실적으로도 적용되지 않는 사문화된 법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프랑스 노동자들은 실제로 주당 39.5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는 유로존 평균인 주당 40.9시간보다 조금 적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 근무는 생산직 노동자에게만 해당될 뿐 사무직이나 간부 사원들은 주당 근무시간을 따지지 않고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 노동자들은 실제로 더 많이 일하고, 시간당 생산성이 다른 유로존 평균보다 약 13%나 높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주 35시간 근무제’가 프랑스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곳이며, 외국인들에게 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잘못된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했다.

마크롱 장관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시간을 법으로 정하지 말고 기업 내부에서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새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도 주 35시간 근무제 폐지를 지지하는 찬성 여론이 75%에 달해 지지 여론도 높다.

하지만 집권 사회당 내부에서는 마크롱 장관을 향해 “역대 사회당 정부에서 가장 우파적인 장관”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회당 장 조레스 의원은 “마크롱 장관은 프랑스 좌파의 역사를 모욕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크리스티앙 폴 하원의원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전 프랑스 대통령)가 (좌파) 내각에 있는 줄은 몰랐다”고 비꼬았다.

한편 마크롱 장관은 예전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지금은 폐지된 ‘부유세’를 도입하려 할 때도 “우리는 백만장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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