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념물은 고통을 겪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영국과 케냐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현재를 직시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크리스천 터너 케냐 주재 영국대사)
12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에는 과거 영국 식민지배에 항거한 케냐인들에게 가한 폭력, 고문, 가혹행위를 반성하는 동상과 기념비가 설치됐다. 제작과 설치에 든 비용 9만 파운드(약 1억6500만 원)는 영국 정부가 전액 부담했다. 영국은 식민통치 60년 만에 고문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금도 지급한 데 이어 양국의 화해를 상징하는 기념물까지 조성한 것이다.
케냐인들은 1952년 주요 부족인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영국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마우마우’ 무장봉기를 시작했다. 마우마우는 당시 케냐 독립운동을 이끈 단체의 이름이다. 영국 식민통치 당국은 1952∼1960년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봉기 가담자들을 체포해 물고문, 생매장, 성폭행 등 가혹행위를 하며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이 기간 영국인 사망자는 32명에 그쳤으나 케냐인은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케냐 국가인권위원회(KHRC)는 9만 명이 처형되거나 고문당했고, 16만 명이 체포돼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2013년 6월 윌리엄 헤이그 전 영국 외교장관이 “영국 정부는 식민통치 당국이 케냐인을 상대로 저지른 고문과 가혹행위를 인정한다. 이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히며 피해자 5228명에게 총 1990만 파운드(약 364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행사에는 수천 명의 마우마우 독립투사가 참석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미나 모하메드 케냐 외교장관은 “조형물이 화해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쿠아 무투아 케냐 국가인권위원장은 “식민통치는 인권에 대한 범죄였지만 영국의 사과는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이번 조형물 건립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가혹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식민통치국의 사례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최근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과 사과에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3년 9월 인도네시아 점령 통치 시기인 1945∼1949년에 저지른 대규모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가 1911년부터 30년간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것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리비아에 25년간 50억 달러(약 5조8000억 원)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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