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은 19일 새벽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정·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쉽게 말하면 일본이 이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뜻에 따라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 60%가 안보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80%가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수만 명이 국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통에 자민당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왜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인은 여론을 의식하기 마련인데 아베 총리는 왜 지지율이 떨어질 게 뻔한 일을 강행한 걸까. 이 책 ‘군사입국에의 야망’을 읽고 나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8월 초 출간된 이 책은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교수, 야마다 아키라(山田朗) 메이지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21 사무국장 등 각 분야의 ‘아베 저격수’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모여서 쓴 책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면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던 부분은 집단 자위권 법안의 배경을 다룬 1장과 아베 총리의 사상적 배경을 알 수 있는 3장이었다. 1장에서 고모리 교수는 올해 아베 총리의 방미를 맞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한 4월 27일을 일본이 ‘전쟁하는 나라로 전환된 날’로 꼽는다. 이후 법안 처리는 아베 총리가 미국에 한 약속을 지키려는 후속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 자위권 법안이 그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91년 걸프전 당시 평화헌법을 이유로 군사지원 대신 재정지원을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외파병의 길을 넓혀 왔다.
물론 더 올라가면 무력행사와 전력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대한 불만은 전쟁 직후부터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6·25전쟁이 일본에 자위대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이 갑자기 한국전쟁에 투입되면서 질서 유지를 위해 1950년 8월 경찰예비대가 결성됐고 이 조직이 나중에 자위대로 탈바꿈했다. 책에는 우익인사들이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역사를 보여준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배경이 궁금한 이들은 3장을 보면 된다. 다와라 국장은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화된 1990년대 이후 아시아 국가들과의 화해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1993년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 1995년 과거사 사과의 모범으로 불리는 무라야마담화가 나왔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역사수정주의적 색채를 가진 우익세력이 세력을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고 이 사실이 교과서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왔다.
고노담화가 나온 1993년 처음 의원배지를 단 아베 총리는 우익 원로들의 지원 하에 우익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일본회의’ ‘일본의 앞길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등 각종 우익단체가 그를 지원했고 그 결과 극우세력의 상징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소속된 의원연맹은 12개에 이르는데 대부분 우익 단체다.
그와 비슷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지금의 아베 내각에 포진해 있다는 분석에 이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책에 따르면 지난해 출범한 아베 3기 내각에서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소속 장관은 19명 중 15명에 이른다. 아베 총리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자리를 채울 후보들은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참고로 책의 2장은 군사 및 무기 분야를 언급하며 일본의 방위 실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4장은 군사대국화에 대한 재계의 반응을 다루고 있으며 5장은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이 어떻게 전후처리를 했는지를 언급한다. 아베 총리는 9월 초 자민당 총재로 재선돼 다시 3년의 임기를 앞두게 됐다. 호불호와는 별개로 그와 그의 세력들을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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