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준금리 동결로 진정되는 듯 했던 신흥국 화폐가치 하락세가 재연되면서 낙폭이 큰 브라질과 말레이시아 등에서 외환위기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23일 보도했다.
22일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전일대비 1.89% 떨어진 달러당 4.0604헤알을 나타냈다. 1994년 헤알화 도입 후 사상최저치로 올해 들어서만 31.2% 하락했다. 말레이시아 링깃화 도 전일대비 0.69% 낮은 달러 당 4.3013링깃을 나타내 1998년 1월 당시 사상최저치 4.7700링깃에 바짝 다가섰다. 이날 인도네시아 루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터키 리라화, 태국 바트화,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일제히 큰 폭 하락했다.
이들 나라의 CDS 가산금리도 연일 상승세다. CDS 가산금리는 국가나 기업이 부도날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파생상품인 CDS에 추가로 붙는 금리로 수치가 높을수록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브라질의 CDS 가산금리는 올해 초 대비 181bp(1bp=0.01%)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자국 정치 불안, 중국 경기둔화, 미 금리인상 불확실성을 신흥국 경제 불안 3대 요인으로 꼽는다. 대표적 예가 브라질이다. 지난해 말 재선에 성공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68)은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연루 의혹에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경제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의 국정운영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71%에 달했다. 포브스는 “브라질이 그리스를 닮아가고 있다”며 “호세프 대통령이 2018년 말까지 남은 임기를 못 채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퇴진 요구에 직면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62)는 미 법무부의 조사까지 받고 있다. NYT 등 미 언론은 21일 미 당국이 나집 총리의 의붓아들 리자 아지즈가 미국에서 부동산을 구매하는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이로 인해 얻은 불법 차익이 나집 총리에게 흘러들어갔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집권당의 연정 구성 실패, 쿠르드족 및 이슬람국가(IS)와의 유혈 분쟁을 겪는 터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63)의 15년 장기집권 피로 및 서방 경제제재로 국민 분열이 심한 러시아, 8월 수도 방콕 한복판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로 뒤숭숭한 태국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때 세계의 성장엔진이었으나 이제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의 주 요인이 된 중국 경제도 좋지 않다. 중국 정부는 23일 9월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가 47.0으로 집계돼 2009년 3월 이후 6년 6개월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 제조업 경기의 바로미터인 차이신 지수가 50 이하이면 경기 위축을 뜻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중국 성장둔화는 예상보다 큰 위험”이라며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중국 경제둔화를 이유로 22일 아시아 전체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7월보다 0.3%포인트 낮은 5.8%로 예상했다. 이는 2001년 4.9% 이후 14년 최저치다.
미국이 9월에는 금리를 동결했지만 여전히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신흥국에 악재다. 블룸버그는 “금리인상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도 신흥국 통화가 급락하는데 실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 투자됐던 투자금이 고금리를 보장하는 미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다수 신흥국의 경제구조 자체가 취약한 것도 문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흥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규모는 167%에 달해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2009년 1분기(115%)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신흥국 중앙은행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이미 화폐가치 하락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면 통화가치 추가 하락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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