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치원함이 1894년 9월 17일 일본 함대와의 전투에서 침몰되기 전까지 서해를 누비던 당시의 모습. 동아일보DB
중국이 121년 전 청일전쟁 당시 침몰했던 북양(北洋)함대 소속 ‘치원(致遠)’함을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앞바다에서 발견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29일 지난해 10월 해저 진흙층에서 발견한 침몰선이 고고학자들의 검증 결과 치원함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함선은 발견 당시 선체 대부분은 수 m의 두꺼운 진흙층 속에 묻혀 있었고, 현장에서는 주포, 탄약, 포탄, 총구 10개가 있는 기관총 등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기관총은 당시 치원함에만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고학자는 “치원함 갑판이 커다란 돌덩어리로 눌려 있었다”며 “일본군이 중국 풍수를 훼손할 목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치원함은 중국에서 외국군의 침략에 최후까지 항거하는 투쟁정신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역사교과서에도 실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함선이다. 등세창(鄧世昌) 함장을 비롯한 장병 240여 명은 1894년 9월 17일 벌어진 ‘황해해전(일명 압록강해전)’에서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당시 등 함장은 부하들에게 “우리가 죽더라도 국가의 명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독려하며 일본 전함 요시노(吉野)와 충돌하기 위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 군함은 일본군이 쏜 포탄에 맞아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침몰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청일전쟁 120주년을 기념해 3700만 위안(약 69억 원)을 들여 치원함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길이 81m, 배수량 2300t의 장갑순양함인 치원함은 최고속력 18노트의 증기기관과 210mm 주포 5문 등을 장착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1885년부터 1887년 사이 영국에서 2000∼7000t급의 최신예 대형 장갑군함 7척을 사들였다. 이런 군함들을 거느린 북양함대는 당시 아시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수병들의 사기 저하와 훈련 부족, 부패로 인한 불량 포탄 공급 등으로 일본 함대와의 전투에서 주력 전함 5척이 줄줄이 격침됐다. 청나라는 이처럼 해전에서 연패한 뒤 일본에 백기를 들었다.
중국은 1996년 국가문물국 산하에 황해해전 침몰 군함 인양사업 추진 기구를 설치하고 침몰된 함정의 위치를 추적해왔다. 중국 정부가 1985년 산둥(山東) 성에 세운 ‘갑오전쟁박물관’ 내부에는 ‘갑오(청일)전쟁 패전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는 낙후되면 곧 당하게 된다는 도리를 다시 입증하였다’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친필을 새긴 동판이 붙어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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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30 09:22:47
역사는 언제나 음지가 양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합니다
2015-09-30 14:52:02
일당 독재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시 청나라가 일본에 진 것도, 장개석 군대가 산적들 같은 공산당 놈들에게 진 것도 다 부패 때문이었다. 중국이 일당 독재를 청산하지 않고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2015-09-30 13:27:28
당시 북양함대가 아시아 최강이라고?? 그것 니들 말이다. 황하 강에서 작전하든 배를 바다에 끌고 나온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청은 해양 전함에 무지했다. 무슨 시답잖은 최강이란 말인가? 당시 아시아 최강 해군 전투력은 말하기 싫어도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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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30 09:22:47
역사는 언제나 음지가 양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합니다
2015-09-30 14:52:02
일당 독재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시 청나라가 일본에 진 것도, 장개석 군대가 산적들 같은 공산당 놈들에게 진 것도 다 부패 때문이었다. 중국이 일당 독재를 청산하지 않고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2015-09-30 13:27:28
당시 북양함대가 아시아 최강이라고?? 그것 니들 말이다. 황하 강에서 작전하든 배를 바다에 끌고 나온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청은 해양 전함에 무지했다. 무슨 시답잖은 최강이란 말인가? 당시 아시아 최강 해군 전투력은 말하기 싫어도 일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