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남쪽으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리데르커르크 시 소재 전시디자인 기업 차이. 임직원은 51명에 불과하지만 삼성전자, 재규어 등 쟁쟁한 기업들의 파트너로서 네덜란드 내 동종 업계 ‘톱3’에 꼽히는 회사다. 아네터 코닝 씨는 이 회사 인사 책임자다. 1993년 입사한 그는 2000년 회사에서 가장 먼저 파트타임으로 전환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는 그는 주로 월, 수, 목요일에 출근한다. 업무상 필요할 경우 월, 화, 목요일 또는 월, 수, 금요일 근무로 자유롭게 패턴을 바꾼다. 코닝 씨는 “2, 3년 후에는 회사에 다시 풀타임 전환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2. 독일 아니타 마이스(37·여)
지난달 14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아니타 마이스 씨 역시 ‘워킹맘’이다. 물류회사 하르트로트의 경영지원 부서에서 일하는 그는 2013년 1년간 육아휴직을 한 뒤 지난해 회사에 복귀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전환했다. 월∼목요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이틀은 오후 2시까지, 이틀은 오후 3시까지 일한다. 주당 25시간만 근무하지만 엄연한 정규직이다. 하르트로트는 마이스 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당 25시간 근무할 직원 1명을 추가로 채용했다. 베아테 마크 하르트로트 인사담당 부장은 “직원들은 커리어를 이어가길 원하고, 회사는 그들의 노하우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 형태는 양자 간 합의에 따라 충분히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이와 하르트로트의 파트타임 직원 비율은 각각 23.5%(51명 중 12명)와 15.1%(497명 중 75명). 육아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하기 어렵지만 업무 커리어를 중단하고 싶지 않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파트타임도 정규직인 만큼 회사 복지 혜택이 줄어들 염려도 없다. 회사로서는 검증된 직원을 계속 활용할 수 있다. 파트타임 전환자가 생길 때마다 추가 인력을 뽑아야 하지만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파트타임 구직자를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두 나라 모두 뼈를 깎는 선행적 노동 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파트타임 천국 네덜란드
1970, 80년대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은 네덜란드는 1982년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으로 기사회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일자리 분배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등 78개 사항에 대한 노사정 대타협으로 실업 문제는 빠르게 해결됐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1990년대 들어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을 만나게 된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생산가능 인력이 부족한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1994, 95년 여성 고용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1996년에는 파트타임도 고용 6개월이 지나면 국민연금을 포함한 모든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혜택을 주는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을 제정했다.
200여 개 네덜란드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한 ‘MKB’(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경제단체) 톤 스훈마에커르스 인사정책 담당자는 “일할 사람이 줄어들어 여성들을 노동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했다”며 “일주일에 3, 4일 일하는 파트타임 근로자를 적소에 쓰면서 기업들도 경영 상황에 따른 고용 전략을 펴게 됐다”고 말했다.
풀타임 일자리를 찾는 데 번번이 실패하던 여성들은 파트타임으로 앞다퉈 일자리를 찾았다. 이미 직장을 가진 여성들은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대신에 파트타임으로의 전환을 선택했다. 실제 2002년 파트타임 근로자는 1992년의 2.5배로 늘어났다.
페터르 린트호르스트 차이 재무담당 이사는 “파트타임 근로자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훨씬 높다”며 “또한 풀타임과 파트타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 생산성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노동 유연성으로 날개 단 독일
독일은 어느 나라보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한 나라로 꼽힌다. 정규직 고용 보호 수준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정규직으로 한번 채용되면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해고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0년대 초반 실업률이 급격히 치솟는(2005년 11.2%가 최고) 상황에서 독일이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것은 노동시장이었다.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시동을 건 ‘하르츠 개혁’이 그것이다. 홀거 샤퍼 독일경제연구소 박사는 “독일에선 미국 등과 달리 일반해고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노조의 힘도 강하다”며 “결국 노동 시간, 임금 등을 다양하게 하는 ‘내부적 유연성’을 높여 노동 시장 전체에 활력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르츠 개혁은 정규직 해고 요건을 다소 완화(해고 관련 노동법원 제소 가능 사업장 ‘5인 이상’→‘10인 이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노동 유연성 확보에 목적을 뒀다. 미니잡과 미디잡 등 사회보험이 적용되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으로 인력파견회사(TWA)를 통해 실업자들을 대거 임시직으로 흡수했다.
라인하르트 프롤리히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IHK) 홍보국장은 “당시 개혁으로 노동 유연성이 커진 것은 현재 독일 경기 호황의 원동력이 됐다”며 “실업률이 낮아진 것은 물론이고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던 기업들이 다시 국내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1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네덜란드항공(KLM) 소유 건물인 ‘포인트 오브 뷰’. 스히폴 공항 인근에 흩어진 KLM 사옥들 중 하나인 이곳에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마케팅 부문 인력들이 일하고 있다.
6층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1000여 명이 일하고 있다는 설명과 달리 매우 한적한 모습이었다. 각 층 사무 공간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1층 사내 카페에선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이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은 오후 2시도 안 됐지만 이미 백팩을 메고 퇴근길에 나섰다.
KLM 직원인 헹크 스멩크 씨는 “이 건물은 완전히 새로운 근무형태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공식 직함은 ‘새로운 근무형태를 위한 프로그램 매니저’.
KLM는 2012년 포인트 오브 뷰 빌딩을 리모델링한 뒤 이곳에 입주한 ICT 부서에 한해 새로운 근무형태, 새로운 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스마트 워킹’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이 어디에서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사무실 역시 부서 위치만 정해져 있을 뿐 개인 자리는 없다. 이 건물 내 최고위직인 최고정보책임자(CIO)도 예외가 아니다. 직원들은 러시아워를 피해 대부분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3시 전에 사무실을 떠난다. 아예 재택근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KLM이 ICT 부서를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풀타임 정규직이 30%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70%는 파트타임 정규직이거나 계약직이었다. 스멩크 씨는 “파트타임 직원이 많아지면서 빈 사무실 공간이 늘어나자 ‘오픈 오피스’ 개념을 도입했다”며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근무환경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8점이나 나왔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KLM은 현재 오픈 오피스의 성과에 대한 연구용역을 외부 연구소에 맡겨 놓은 상태다. 여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오픈 오피스를 모든 부서와 지사에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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