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의 압박이 전방위로 고조되고 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5일 남중국해 인근 해역에서 작전 중인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루스벨트함에 탑승했다. 카터 장관은 “미국은 우리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군사력을 운용하겠다는 상징의 의미로 이 바다(남중국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중국해 문제는 미 정치권의 핫이슈로도 떠올랐다. 공화당 중진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5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남중국해 해역에 선박을 보내(중국을 압박하)라”고 촉구했다.
○ 미 국방장관, 남중국해 순시
AFP통신 등에 따르면 카터 장관은 전날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가 열렸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동부 사바 주로 이동한 뒤 미 해병대의 수직 이착륙 수송기 ‘MV-22 오스프레이’를 타고 루스벨트함에 도착했다.
카터 장관은 3시간여 동안 보르네오 섬 북서쪽 70마일(약 112.7km)을 항해하는 동안 “(오늘의 항해가) 특별하게 주목받는다면 남중국해 영토분쟁으로 인한 긴장 때문”이라며 “(여기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이 중국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며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그는 또 지난달 미 워싱턴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중국해 인공섬을 무장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모두는 말한 것을 준수해야 한다(We all must mean what we say)”라고 말했다.
이번 순시에는 지난주 남중국해 인공섬 12해리 해역을 항해했던 이지스 구축함 라슨함의 로버트 프랜시스 함장도 동행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당시 인공섬 6∼7마일까지 근접 정찰했다. 중국 구축함들이 우리를 며칠 동안 바짝 따라붙으며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국제법에 따라 국제 수로에서 작전하고 있다고 답했다”며 “나는 전혀 겁먹지 않았고 오히려 작전을 즐겼다”고 말했다.
○ 중국 반발
이날 순시에는 히샤무딘 후세인 말레이시아 국방장관도 동행했다. AP통신은 “미 국방장관이 항공모함에 오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면서 “후세인 장관이 동행한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카터 장관과 후세인 장관은 루스벨트함에서 전투기 이착륙 작전을 참관하고 해군의 작전 브리핑을 받았다. 말레이시아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의 핵심 관련국이자 미국과 함께 중국의 인공섬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항행의 자유를 핑계로 남중국해를 군사화하고 다른 국가의 주권과 안보이익을 위협하는 도발 행위에 반대한다”고 했다.
○ 미 입법부까지 나서
매케인 위원장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나라도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어디든지 항행할 권리가 있다”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가 저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미국과 마찬가지의 행동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을 포함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한국에도 동조를 요청할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어 “미국은 중국에 대해 공격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명확히 전제하면서도 “일본을 포함한 지역 제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힘에 의한 평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9월 통과된 일본의 안보법제는 일본이 (동북아) 지역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오바마 행정부 전방위 구두 공세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도 모든 채널을 통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국무부와 국방부 당국자들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여론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 대한 공동 압박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모양새다.
제프 데이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4일 워싱턴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위한 작전은 우리(미국)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해온 것이다. 특별히 중국만을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국방부가 해마다 발행하는 보고서를 보라. 2015회계연도(2014년 10월∼2015년 9월)에 우리는 해상에서 과도한 주장을 하는 18개국을 상대로 항행의 자유 확보를 위한 전쟁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18개국에는 미국의 동맹국도 있고 협력국도 있다. ‘좋은 나라’와 ‘좋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 놓고 차별하지 않는다. 과도한 주장이 있으면 이에 도전할 뿐”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나라와 달리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헤이, 이것저것은 내 것이야’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저 남중국해가 어떤 나라든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국제 수로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초청으로 열린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중국은 인공섬 건설을 통해 긴장과 의심, 우려를 만들어 내고 있다”며 “남중국해 문제는 암석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에 대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미 정부는 ‘군사 대결’ 상황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이날 데이비스 대변인은 한 기자가 “미군이 남중국해 주변에 대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매월 2회 수행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확인해 줄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미래의 작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우리는 국제법이 허락하는 곳이면 어디든 항행할 것이지만 작전 빈도나 시기, 장소, 방법에 대해 일일이 밝히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했다.
○ 일본 자위대 움직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자위대가 남중국해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본의 안전 보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향후 충분히 검토해 나갈 과제이다. 현재 미국 작전에 자위대가 참가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스가 장관의 이런 답변은 22일 같은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한 데서 한걸음 나아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마이니치신문 등은 “자위대의 활동 참가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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