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베의 도쿄재판 검증은 미국에 대한 도전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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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이 아베 신조 총리 직속기관으로 ‘전쟁 및 역사 인식 검증위원회’를 설치해 태평양전쟁 전범(戰犯)을 단죄했던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 재평가에 나선다. 도쿄재판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진주만 공습 책임자인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 등 A급 전범 7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후(戰後)처리 재판이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도 연루돼 있다. 자민당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의 역사 ‘검증’에 들어가면 이 같은 전쟁 책임은 뒤집힐 공산이 크다.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는 침략전쟁을 비롯한 과거사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 우익은 지금까지 태평양전쟁이 자위전쟁임에도 승전국이 일방적으로 도쿄재판을 강행해 일본을 단죄하고, 전쟁을 포기하게 만든 평화헌법을 강요했다고 주장해왔다. 자민당이 위원회라는 애매한 조직을 만들고 미국을 의식해 검증 결과는 발표하지 않겠다지만 검증 의도가 무엇인지는 뻔하다. 아베 정부는 위안부 동원의 일본군 책임을 인정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검증한 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타협으로 담화에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며 위안부 동원 책임을 부인했다. 도쿄재판 검증도 침략전쟁 책임을 부인하면서 이를 무기삼아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 개정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굳이 도쿄재판 검증을 하겠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은 원활한 점령 통치를 위해 일본 지배층과 야합해 전쟁의 최종 책임자인 일왕 히로히토를 전범 기소에서 제외했다. 일왕이 면죄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 국민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일본 역사 왜곡의 시발점이다. 미국의 소극적 전쟁범죄자 처리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역사 인식 왜곡과 역사 도발을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일본은 도쿄재판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복귀했다. 도쿄재판 검증은 승전국인 미국에 대한 도전이자, 미국이 주도한 전후 질서마저 개조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보통국가’를 넘어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권력국가’를 추구하는데도 미국이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부동의 미일동맹’을 지지할지 알 수 없다. 일본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인권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전후 체제를 뒤엎을 경우 미국은 당사자로서 강력히 경고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도쿄재판#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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