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새역모’의 우익 성향과 검정제의 역기능 비판했던 한국
국가 자긍심 자부심 필요하고 한국 검정제는 무용지물이라서 국정 역사 교과서 만든다면 향후 일본 교과서 비판은 힘들다
시위 떠난 화살이지만 국정이 만능이라는 착각 버려야 그나마 덜 논쟁적인 교과서 나올 것
“이런 이해득실을 넘어선 가치, 또는, 예를 들자면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또 지역을 확실히 지켜서 좋게 만들자는 마음, 그리고 나라를 좋게 만들고 싶다는, 나라를 사랑스러워 하는 마음, 그런 가치를 지금까지 걸핏하면 상당히 낮게 보아 왔다. … 그런 반성으로부터 우리는 확실하게 교육을 재건하고자 생각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도록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의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처음 총리가 되기 7개월 전인 2006년 2월 중의원에서 한 발언이고, 뒤의 것은 우리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한 다음 날인 10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교육의 지향점과 현실 판단, 국가의 역할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이 많이 닮았다.
그러나 발언 배경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베 총리는 1993년 중의원이 된 이후 줄곧 ‘전후 레짐의 탈각’을 내세우며 교육개혁, 역사인식 수정, 야스쿠니신사 참배, 집단자위권 행사, 헌법 개정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다. 도쿄군사재판 재평가도 그중 하나다. 평가야 엇갈리지만 그는 2006년 7월 ‘아름다운 나라로’(2013년 1월 ‘새로운 나라로’로 증보출판)라는 책을 통해 이 모든 쟁점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그는 총리가 되자 곧바로 ‘교육재생회의’를 만들고 2006년 12월, 59년 만에 교육기본법을 개정했다. 개정 교육기본법은 아베 총리의 평소 주장대로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 ‘공공의 정신’ ‘도덕심 배양’ 등을 강조하고, 교육 내용에 대한 국가 개입의 근거도 마련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평소 소신이 아니라 국정 역사 교과서 논쟁에 쐐기를 박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8·15경축사에서 ‘친일 및 독재시대 불법행위 진상 규명’을 화두로 던지자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분명하게 반대했다. 박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인들이 역사를 재단하려고 하면 다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될 리가 없고,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 새로 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반대파의 주장과 다를 게 없다.
11년 전과는 달리 좌파 역사 교과서의 폐해가 크고 시정 방법도 없지 않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해온 과정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의 기존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며 일부 사학자들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결성한 게 1997년, 실제로 책을 펴낸 게 2001년이다. 우리와 문제의식은 같은데, 만드는 주체는 달랐다.
교과서가 나왔을 때 도쿄특파원이었던 기자는 ‘새역모’에 반대하거나 채택 저지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을 ‘양심세력’이라고 부르며 열심히 취재했다. 우익단체와 정치인들이 ‘새역모’를 강력하게 지원한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은 1947년 국정제를 폐지한 이후 검정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본 정부가 검정 과정을 통해 왜곡 교과서를 용인하고 있다며 항의해 왔다. 이제 와서 일본은 검정제가 통하고, 우리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어떨지.
아무튼 한국은 국정제로 전환했다.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온 일본의 시민단체들조차 “한국의 교과서 국정화가 아베 정권에 본격적인 국정화의 구실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서한을 보내왔다. 일본이 국정화로 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국이 일본 정부의 검정 과정을 문제삼기는 어렵게 됐다. 일본의 교육방침이 우리의 국정 지지 그룹과 뭐가 다르냐고 하면 대답이 궁하다. 요즘 한일 전문가 모임에서도 그런 우려가 심심찮게 나온다. 실제로 ‘새역모’는 2001년 당시 “국정 한국이 검정 일본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했다.
기자는 극심한 국론 분열을 우려해 국정과 검정을 모두 허용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이제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하나다. 만들 때 만들더라도 국정이 100% 옳다는 주장은 국민적, 학술적, 정책적 관점에서 무리라는 사실쯤은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엄정함은 있어야 그나마 ‘올바른 교과서’에 근접할 수 있다. 교과서가 나온다고 해서 끝날 문제도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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