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화장실도 철학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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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엽서. ’마오(쩌둥) 주석은 우리 마음 안의 붉은 태양이다’라고 씌어 있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엽서. ’마오(쩌둥) 주석은 우리 마음 안의 붉은 태양이다’라고 씌어 있다.
올 9월 마카오에서다.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화장실이 너무 작아서(Toilet is too small).’ 중국 난징공항에서 출발한 광저우행 여객기 안 통로에서 한 여인이 아이에게 배변을 시킨 사건을 보도한 기사였다. 기사의 제목은 아기 엄마가 한 말이다.

지난해 베이징을 이륙해 미국 디트로이트로 향하던 항공기에서도 좌석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배변한 일이 있었다. 중국인과 관련된 이런 일들은 국내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지난해 이화여대에서는 대학 건물 복도에서 아이에게 소변을 보게 한 일도 있었다. 이 학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캠퍼스는 물론이고 도서관과 대학 건물에까지 들어가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자 ‘중국인 여행자 출입금지’ 경고문을 붙인 적도 있다. 부산 해운대의 한 화장실엔 ‘세면대에서 발 닦지 마세요!’란 안내문도 붙었다. 관리인은 중국인들이 그게 왜 잘못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더라고 전했다.

관광산업이란 국가 대 국가의 비즈니스다. 다른 나라 국민에게 자국민의 일상을 파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유치한 나라와 국민도 어느 정도의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문화의 차이와 상이한 가치 기준에서 오는 오해와 몰이해로 빚어지는 일상의 불편이 그것이다. 물론 거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당사국도 외국으로 나가는 자국민을 교육시켜야 한다. ‘어글리 차이니스’라는 말을 듣기 전에.

중국 정부도 그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 열세 살 중국인 소년이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 룩소르에서 3000년 된 사원에 이름 낙서를 한 사건이 벌어지자 2013년에 128자의 ‘문명여유 공약’을 발표한 것이 그 증거다. 줄서기, 큰 소리로 말하지 않기, 도박 안 하기 등의 행동강령이 들어 있는데, 화장실 부분은 ‘위생에 유의’ 정도로 그쳤다. 내가 보기엔 좀 부족했다. 화장실에 대한 중국인들의 상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너무나 동떨어져 세계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런데 다행히도 최근 중국에서 화장실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국가여유국은 2017년까지 전국의 5만7000개 화장실을 현대식(수세식)으로 짓거나 고쳐서 무료 개방하기로 했다. ‘관광분야 515전략’ 중 첫 번째 ‘5’에 해당하는 ‘선진 관광시장 육성을 위한 5대 목표’(문명·안전·시장화·편리성·경제성) 중 하나로 말이다. 사실 화장실은 중국 안에서도 논란거리다. 배변에 대한 인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차이가 커서다. 중국인은 대소변은 인간의 생리적 현상인 만큼 수치로 여길 이유가 없다, 그러니 가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인에게는 그런 ‘생활 철학’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그걸 통해 중국을 이해한 미국 학자도 있었다. 1960년대에 화장실 문화로 인류문화사를 추적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로버트 박사다. 그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문혁)도 이런 고유의 화장실 문화 덕분에 가능했다고 봤다. 문혁의 무대는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 그는 ‘여기서 열린 허다한 집회가 없었다면 문혁은 결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다’는 가설을 세우고는 광장을 찾아가 ‘화장실’을 살폈다. 시대정신을 일군 숱한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군중이 어떻게 용변을 해결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런데 거기엔 화장실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이 풀렸다. 트럭이 오더니 거기서 내린 인부들이 막대를 바닥에 꽂고 긴 장막을 설치한 다음 꼬챙이로 바닥의 블록을 들어 올렸는데 해답은 하수구 위에 있었다. 디딤돌이 하나 걸러 하나씩 수백 m나 놓여 있었는데 그게 용변기였다. 거기에 옆 사람과의 가림막은 없었다. 지금도 중국 시골엔 이런 게 남아 있다. ‘수치심 없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중국의 실용적인 용변 철학.’ 그것이야말로 로버트 박사가 찾아낸 문혁 성공의 요체였다.

나는 말한다. 용변이나 화장실과 관련한 중국인의 행동을 우리 기준으로 재단해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일시적인 ‘갈등’에 불과해서다. 우리도 그 점에선 자유롭지 않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자유화 이후 물밀듯 해외로 나간 한국인 여행자를 ‘어글리 코리안’으로 불리게 한 일련의 일탈행동 때문이다. 그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에서 ‘어글리 아메리칸’이라 불렸던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개방이란 한 국가의 틀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과정이다. 중국은 아직도 그 과정에 있는 나라다. 그러니 좀 더 기다리자. 우리를 참아줬던 다른 나라들처럼.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화장실#철학#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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