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판징후이(樊京輝·50) 씨가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피살된 장면이 공개되자 중국인들도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그동안 IS가 공개한 민간인 처형 사진에 중국인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서방의 시리아 공습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중국이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과 함께 IS 격퇴전에 참여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중동전 개입을 피해 왔지만 ‘책임 있는 대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와 “당장 군사 행동에 나서라”는 자국 내 여론이 비등할 경우 반(反)IS 전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최근 러시아가 서방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시리아 공습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중국까지 공조에 적극 개입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의 공동 행보가 속도를 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이에는 이로 보복해야’ 들끓는 중국 누리꾼
그동안 공개된 IS에 의한 동양인 살해는 일본인 고토 겐지(後藤健二)와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에 이어 이번이 세 명째다. 이번에 살해된 판 씨는 베이징 출신 전직 교사로 관영 중국중앙(CC)TV의 프로그램 제작과 방송 광고 분야에서 일한 프리랜서 컨설턴트다. 그는 과거 CCTV의 유명 앵커 바이옌쑹(白巖松)과의 인터뷰에서 “편안한 교사직을 버리고 나선 것은 자극이 있는 삶을 위해서다”라고 말하는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인물이다.
무고한 자국민이 IS에 납치된 후 무참히 살해된 사실과 처참한 시신 사진이 공개되자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당장 군사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등 분위기가 격앙되고 있다.
전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장교 출신으로 반테러 전문가인 웨강(岳剛) 평론원은 19일 “‘이에는 이’로 보복해야 한다. 중국인과 노르웨이인 인질을 살해한 것은 전 세계를 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직접적인 타격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누리꾼은 “IS가 원하는 것은 전쟁이다. 그들에게 전쟁을 해 주자”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누리꾼은 “이번에도 정부가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펑황(鳳凰)위성TV가 19일 누리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국이 IS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10명 중 8명 이상이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 군사 개입은 미지수
판 씨의 소식이 알려진 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즉각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시 주석은 “그 어떤 테러 범죄 활동도 강력히 타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외국 방문 기간 중 국내 사안에 입장을 발표하는 경우는 드문 데다 ‘타격’이라는 말을 꺼내 주목을 끌었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도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테러는 인류의 공적으로, 인류 문명의 기초를 무너뜨리려 하는 어떠한 테러 활동에 대해서도 단호히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판 씨의 피살 소식이 전해진 뒤 인터넷에서 군사 개입을 둘러싼 격론이 벌어지자 중국 당국은 인터넷 통제에 나섰다. 중국의 웨이보에서 ‘중국인 인질’ ‘판징웨이’ 등을 입력하면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반응이나 관영 언론 보도 등이 주로 검색되고, ‘무력 개입’에 관련된 단어는 삭제돼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국제적 테러에 대해 ‘원론적인 비난’을 하면서도 군사 개입 등 행동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내정 불간섭 원칙’과 관련이 깊다. 중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며 미국의 ‘군사주의’를 비판해 왔다.
그렇지만 이번 자국민 살해가 이 같은 정책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미국이 중동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수렁에 빠진 것을 본 중국은 군사 개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더 이상 고립적인 입장만을 고수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전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