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난 저우야웨이(周雅薇·23·여) 씨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했음에도 친중 기류를 찾기 어려웠다.
내년 1월 16일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만에선 야당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지고 있었다. 마 총통이 이끄는 여당인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는 민주진보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에게 더블스코어 차로 뒤져 있다. 도박 사이트에선 선거에서 누가 이길지가 아니라 얼마나 큰 차이로 승패가 갈릴지를 놓고 내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 중국의 ‘곁불’ 쬐다가 된서리
대만은 출신과 지역에 따라 지지 정당이 확연히 갈려 왔다. 국공내전 이후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북부 지역은 국민당을, 원래 대만서 살던 본성인(本省人)과 남부는 민진당을 지지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 주석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에 대한 성토가 일방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제난이다. 한국의 통계청 격인 행정원 주계총처(主計總處)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1.06%. 현지에선 그나마 ‘바오이(保一·1%대 성장 달성)’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대만이 1%대 성장에 그치게 된 건 성장엔진이었던 중국이 오히려 대만 제조업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1990년대 대외 투자의 80%를 중국 본토에 쏟아부었다. ‘홍색공급망’으로 불리는 중국 내 산업 체인에서 중간재를 담당하며 고도성장을 누려왔던 것. 국가발전위원회 우밍후이(吳明慧) 처장은 “이젠 중국 기업들이 대만 업체들을 합병할 정도로 위협적”이라며 “대만으로 유턴하는 기업들이 있지만 여건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의존도가 교역 총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중국 내 생산을 늘려온 까닭에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은 상태다. 대만 내 제조업 비중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45%였지만 지금은 30%로 쪼그라들었다. 6년 전부터 디스플레이 등 신산업 위주로 체질을 바꾸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 회복이 난망하다.
제조업 쇠퇴는 일자리 부족과 임금 정체를 불러왔다. 대만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한국의 88만 원 세대에 해당하는 ‘22K(2만2000대만달러·약 77만8000원) 세대’로 부른다. 노동부 류자쥔(劉佳鈞) 노동력발전서장은 “대졸자들이 서비스업으로 많이 진출하는데 초임이 월 1000달러(116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제2야당인 친민당의 랴오창쑹(廖蒼松) 부비서장은 “국민당 집권기에 표면적으로는 성장률이 플러스였지만 실질 성장은 전혀 없었다”며 “임금이 정체된 젊은이들이 높은 집값과 물가에 신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잉주 총통은 임기 동안 중국과 23개의 경제 관련 협정을 체결하며 친중 행보를 강화했다. 대만 국민 수만 명이 지난해 3월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대하며 입법원을 점거한 것은 한때 중국 성장의 곁불을 쬐던 대만이 이젠 중국의 자기장에서 벗어나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 탈중(脫中)을 위한 몸부림
중국발 경기 침체가 정치 지형마저 친중이냐 탈중이냐로 바꾸고 있지만, 위기 탈출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중화경제연구원 리춘(李淳) 부집행장은 “올 들어 10월까지 대(對)동남아 투자가 지난해 동기 대비 22% 늘었다.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대만 기업 10만 개 이상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생산 공장을 제3국으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만이 그나마 발견한 활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이다. 대만은 파나마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5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는데, TPP를 통해 중국 이외의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 부집행장은 “중국이 TPP 회원국에 ‘차이나 퍼스트(중국 먼저 가입)’를 주장할 경우 방법이 딱히 없다”고 전망했다.
대만 정치권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국민들은 대만 독립론을 표방하는 민진당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정작 민진당은 ‘현실 유지’에 집착한다. 황즈팡(黃志芳) 민진당 국제사무부 주임(전 외교장관)은 “우리는 독립을 말하지 않는다. 독립할지는 미래에 국민들이 선택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