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총선 17년만에 우파 승리
“野 과반 확보” 발표에 축제 분위기… 차베스식 복지 포퓰리즘 사망 선고
물가 치솟아 인플레 발표도 포기… 2015년 성장률 시리아 이어 꼴찌서 두번째
마두로 “헌법의 승리” 결과 수용
‘대다수 유권자는 후보가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조건 야당만 찍으면 그만이라고 했다.’(뉴욕타임스)
우고 차베스로 대표되는 21세기 사회주의도 종말을 고하는 것인가. 5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차베스주의에 반대하는 야당이 압승을 거두자 베네수엘라 전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표 다음 날인 7일 새벽. 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시민들은 레게풍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불꽃놀이를 하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고 전했다. 카라카스 빈민가에 사는 페르난도 세키레 씨(31)는 “동네 전체가 이렇게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른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민주주의가 이겼다”고 말했다.
6일 이른 아침 투표 개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투표소로 달려갔다는 한 시민은 보라색으로 물든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대부분의 유권자가 야당을 찍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다. 최소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왔지만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었다”고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야당 지도자 중 한 명인 엔리 라모스는 “베네수엘라는 지금 이행기로 접어들고 있다. 현 정권은 힘을 잃었다”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조기 사임 가능성을 점쳤다.
17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유권자들의 열망은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올해 성장률은 세계적으로 꼴찌(시리아)에서 두 번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자 정부는 아예 인플레이션율 발표를 포기했다. 한 시민은 BBC에 “우유 커피 쌀 기저귀 등 생필품 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데다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어 살 수가 없다. 병원에 가도 약을 구할 수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최악의 경제난은 무상 복지라는 포퓰리즘 정책이 저유가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비롯됐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카리스마로 1998년 집권 이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줄곧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왔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를 무기로 복지정책을 쏟아내며 빈곤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차베스는 2013년 3월 세상을 떠나기 전 국회의장과 부통령을 지낸 마두로 대통령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버스운전사로 일한 노동운동가 출신의 마두로는 ‘차베스를 신봉하는 베네수엘라인’이라는 뜻의 ‘차비스타(Chavista)’를 내세우며 같은 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집권 후에도 차베스의 인기에 편승하면서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정치적 궁지에 내몰렸다. 우선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재정이 급속히 악화됐다. 여기에 야당 인사에 대한 무차별 탄압과 치안 불안까지 겹치면서 국민의 불신이 깊어졌다. 지난해 2월 대학 교정에서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시민 로드리고 두란 씨(28)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때 나는 차비스모(차베스의 포퓰리즘적 사회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그들(차베스와 마두로)은 우리를 속였다”고 말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중간 개표 결과가 나온 뒤 “헌법과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며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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