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잇단 ‘간병 살인’… 고령화사회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8일 03시 00분


절반은 불면증 시달리다 범행

지난달 22일 일본 중부 사이타마(埼玉) 현과 군마(群馬) 현 경계의 강에서는 74세 남성과 81세 여성이 시체로 발견됐다. 강변에서 저체온증 상태로 발견된 이들의 딸 나미가타 아쓰코(波方敦子·47) 씨는 경찰 조사에서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간병에 지쳤다. 저금도 연금도 없다. 아버지가 ‘다 함께 죽자’고 해 세 가족이 차를 타고 강으로 들어갔다”고 말해 일본에 충격을 줬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나미카타 씨는 10년 전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밤낮으로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최근 들어 딸을 몰라볼 정도로 악화됐다. 여기에 신문 배달로 매달 18만5000엔(약 180만 원)을 받아 가계를 지탱하던 아버지가 병으로 일을 그만두면서 생계가 막막해지자 자살을 결심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6일 전에는 후쿠시마(福島) 현의 한 주택에서 91세인 시어머니 간병에 지친 며느리(62)가 같이 죽을 생각으로 불을 질렀다가 본인만 살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간병에 지친 가족이 환자를 죽이는 ‘간병 살인’이 일본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7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간병 중의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은 2007∼2014년 371건이나 일어났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고령 환자를 수용할 시설이 충분치 않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마이니치신문은 “경찰청이 간병 살인 44건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20건의 경우 가해자가 불면증으로 심신이 지친 끝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치매와 중병 환자는 시도 때도 없이 도움을 청하는데 이 때문에 간병을 맡은 가족이 심각한 수면 부족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20건 중 8건은 가해자가 범행 후 정신감정에서 우울증 또는 적응장애 판정을 받았다.

신문은 “20건 외의 가해자가 불면증에 시달렸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던 가해자의 비율은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라고 전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간병살인#고령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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