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한파’가 한반도를 향해 몰려오고 있다. 바로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5, 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릴 것임을 기정사실화했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제로(0) 금리, 양적완화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선 게 2008년 12월이었다. 우리는 7년 만에 다시 새로운 길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7년 만에 글로벌 경제의 판이 뒤집힌다는 의미다. 향후 미국 금리인상 속도에 따라 한국과 세계 경제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무엇보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이 돈을 풀자 신흥국에는 더 많은 돈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신용 창출과 레버리지 효과 때문이다. 선진국 투자자들은 저금리의 돈을 빌려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신흥국의 채권과 주식,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대출해줬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09∼2014년 미 연준이 4조 달러를 풀었는데 신흥국으로 들어온 미국 자금은 이보다 훨씬 많은 7조 달러다.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도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5배인 8조 달러(약 9280조 원)를 양적완화로 시장에 쏟아 부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과의 금리 차가 줄면서 수익이 줄어든 자금이 상당 부분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몇 년 동안 금리를 내렸던 미국은 1994년 2월 연 3%였던 기준금리를 1년 만에 6%까지 올렸다. 그러자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일어났고 이어 아시아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한국의 경우 일본의 단기 자금 629억 달러 중 40%가 넘는 375억 달러가 1997년 한 해에 유출됐다.(강만수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덕분에 한국도 유동성의 바다에 흠뻑 빠졌다. 기업과 가계는 이자가 싼 자금을 부족함 없이 끌어다 썼다. 2008년 말 119조 원이던 회사채 발행 잔액은 작년 말 266조 원으로 123% 급증했다. 가계부채는 2008년 말 724조 원에서 올 9월 말 1166조 원으로 불었다. 한국 기업이 외국에서 달러로 조달한 달러표시 채권 중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이 210억 달러로 신흥국 가운데 가장 많다.
이제 파티는 끝났다.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가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해 기업의 채무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다. 가계와 기업은 돈 빌리기가 힘들어질 것이고 이자비용도 올라갈 것이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치도 하락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금리인상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기 전에 기업과 가계는 하루빨리 ‘부채 다이어트’에 나서야 한다.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지만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설마 미국이 다른 나라 사정 안 봐주고 과거처럼 쉬지 않고 금리를 올리겠어?’라며 요행을 바랄 순 없다. 지금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001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썰물이 되면 누가 수영복을 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라고 했다. 취약한 가계와 기업의 실체는 유동성이 빠질 때 나타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수영복을 입고 있는지, 벗고 있는지 드러날 시점이 머지않았다. 나도 2년 전 급전이 필요해 빌린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금 5000만 원을 허리띠를 졸라매 서둘러 갚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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