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막말’이 지지율 올려준다? 기이한 현상 실체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9일 18시 09분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 후보(69)의 선거 캠프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가장 화려한 쇼핑거리인 피프스 애비뉴(5번가) 트럼프타워 안에 있다. 그 건물 앞엔 늘 최소 20~30명 기자가 진을 치고 있다. 트럼프의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다. 미 언론은 그의 발언을 듣고 ‘막말’ ‘넌센스’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다시 그의 말을 좇는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연설 9만5000단어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불길한(ominous) 표현’이라고 보도했다. 정치인은 희망과 꿈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는 워싱턴 정치의 오랜 규칙이 깨지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스스로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한다. 인종 남녀 차별적 언어 사용 등을 삼가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따위는 신경 안 쓴다”고 공언한다. 최근 발간한 ‘망가진 미국’이란 자서전 표지에도 일부러 잔뜩 찡그린 표정의 사진을 실었다. 강력한 리더십을 상실한 한심한 나라(미국)꼴에 대해, 그렇게 만든 기성정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워싱턴 정치에 있어서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인 그의 ‘막말’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선 국면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8일 미 대형은행 중 하나인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개최한 ‘2016년 경제 전망 설명회’에서도 정치 관련 질문은 “트럼프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가 유일했다. CNN은 이날 ‘트럼프의 막말이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고 계속 올려주고 있다. 말실수를 하면 인기가 떨어지던 기존 정치의 패턴이 트럼프에겐 먹히지 않는다’는 심층기획물을 내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지금은 합의(Consensus)의 시대가 아니라 많은 이슈에서 이해가 엇갈리는 의견불일치(Dissensus)의 시대다. 트럼프의 득세는 그런 시대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오랜 방송 경험이 있는 트럼프는 미디어 생리를 잘 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미디어에서 공격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미디어가 나를 이용하는 방식대로, 나도 미디어를 이용할 뿐이다. 독자나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면 그 다음은 내 마음대로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적었다.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지에 전면광고를 내려면 10만 달러(1억여 원) 넘게 드는데 돈 한 푼 안 쓰고 ‘자기 홍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막말은 계속 될 가능성이 크다. 그의 발언 내용뿐만 아니라 그에 깔린 의도도 깊게 살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기이한 트럼프 현상’의 진짜 실체가 보일지 모른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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