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샘-주말엔 자기계발 연수… 가혹한 근무 못견뎌 신입사원 자살
창업주 “자살할 직원 채용한 게 잘못”, 여론 뭇매… 7년 소송끝에 사과-배상
“몸이 힘들고 마음이 처진다. 제발 구해줘.”
2008년 5월 15일. 일본 이자카야(선술집) 체인 대기업 ‘와타미(和民)’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한 달 된 모리 미나(森美菜·당시 26세·여) 씨는 자신의 노트에 괴로운 일상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6월. 모리 씨는 맨션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와타미의 참혹한 근로 실태는 모리 씨 부모가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이후 열린 재판에서 드러났다.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점포에 배치된 모리 씨는 매일 밤샘 근무에 시달렸다. 문을 열기 2시간 전인 오후 3시에 출근해야 했고, 퇴근은 빨라야 다음 날 오전 3시 반이었다. 하지만 택시비를 주지 않아 첫 전철이 다닐 때까지 점포에서 대기했다. 입사 후 한 달간 시간외 근무는 141시간으로, 정부가 정한 ‘과로사 라인’(월 100시간)을 크게 넘어서 적응장애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휴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주말엔 도쿄에서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열린 연수에 참석해 창업자인 와타나베 미키(渡邊美樹·56) 자민당 참의원 의원의 저서를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거나 그의 말을 암기해야 했다. 자발적이라면서 시간외 근무로 쳐주지도 않았다. 입사 후 2개월간 온전히 하루를 쉰 것은 나흘뿐이었다. 와타나베 의원은 저서에서 “365일 24시간 죽을 때까지 일하라”고 썼다. 책값과 회사 피복비도 월급에서 뺐다.
견디지 못한 모리 씨가 입사 2개월 만에 목숨을 끊었지만 회사 측은 책임을 외면했다. 와타나베 의원은 아사히신문 취재에 “자살할 직원을 채용한 게 잘못”이라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일본 소비자들이 반격에 나섰다. 소비자 사이에서 ‘블랙기업’이라는 말이 돌면서 올해 4∼9월 이 회사는 14억 엔(약 135억 원)의 적자를 냈다. 1998년 상장 이후 최악의 경영 실적이었다. 93%에 달하던 와타미 계열 노인홈 입주율도 소송 이후 78%까지 떨어졌다.
결국 소송 후 7년이 지난 8일 와타미는 회사와 창업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1억3000만 엔을 지불하는 등 ‘화해’에 합의했다. 최근 입사자 1000명에게는 책값과 피복비도 돌려주기로 했다. 와타나베 의원은 이날 재판에 나와 고개를 숙인 채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모리 씨의 어머니 유코(祐子·61) 씨는 “할 수만 있다면 (딸이 입사하기 전인) 8년 전으로 시계를 돌리고 싶다”고 울먹였다.
이번 합의금은 통상 사례의 2배였고 특별히 경영자 책임도 물었다. 장기 경기침체 속에 2000년대 후반부터 늘고 있는 블랙기업에 경각심을 주는 재판이었다. 일본에서는 또 다른 이자카야 체인인 ‘니혼카이쇼야’에서도 2007년 종업원 과로사 사건이 발생했고 쇠고기덮밥 체인 ‘스키야’에서는 지난해 아르바이트생이 심야 근무를 거부하는 등 블랙기업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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