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랄 땐 ‘여성 대통령’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이젠 그 때가 됐다.”(50~60대 베이비붐 세대 여성)
“대통령 후보가 단지 (나와 같은) 여자란 이유로 지지해야 한다면 ‘여자여서 안 찍겠다’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20~30대 밀레니엄 세대 여성)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놓고 민주당 지지 성향의 여성들 사이에 ‘세대 갈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13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첫 대선 도전이었던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여성의 압도적 지지를 얻지 못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같은 여성인 클린턴 전 장관을 외면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당시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23세 이하 여성 표의 51%를 오바마 대통령이 가져갔다. 클린턴 전 장관은 가장 진보적 성향을 보였던 존 에드워드 후보(19%)보다도 8%포인트나 적은 11%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66세 이상’ 여성만 클린턴 전 장관에게 가장 많은 표를 줬다.
두 번째 대선 도전인 이번 경선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50대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 여성,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 여성들은 “나는 평생 양성 평등을 위한 전쟁을 해왔다. 이제 우리는 늙었고,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적다.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힐러리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어머니 또는 할머니 세대와 비교해 남녀차별을 거의 받지 않고 자라온 20~30대 밀레니엄 세대의 인식은 크게 다르다. 그들은 “힐러리가 아니라도 여성 대통령은 곧 나올 것 같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지지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절실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찍겠다”고 말한다.
정치 전문가들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 폭발시킨 흥분과 감동을, 클린턴 전 장관은 아직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버드대정치연구소가 최근 젊은 유권자 2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8~29세 여성의 38%가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해,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율(40%)보다 낮았다.
2008년 민주당 경선 때도 젊은(18~29세) 백인 여성층에선 클린턴 전 장관(42%)이 오바마 대통령(54%)보다 12%포인트나 뒤졌다. 당시 흑인 여성들도 ‘같은 여성’인 클린턴 전 장관(14%)보다 ‘같은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81%)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엔 ‘같은 실패’를 맛보지 않기 위해 젊은 여성층 공략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정책적으론 비싼 등록금, 학자금 빚, 흑인과 경찰의 갈등 문제 같은 진보적인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또 20~30대 여성들이 많이 보는 패션잡지들과 이례적인 장문의 인터뷰를 하고, 뉴욕에 사는 젊은 여성들의 삶을 다룬 시트콤 드라마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은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열렬한 지지자임을 자처하는 여대생 테일러 케이시(21)는 지지 이유에 대해 “대학 등록금 지원 정책, 사법 개혁 방안, 대(對)중동 정책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어 “클린턴 전 장관이 남자라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후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책이 좋아서 지지한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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