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여성 이혼 6개월 내 재혼 가능…양성평등 향한 ‘절반의 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6일 17시 46분


부부가 같은 성을 쓰게 한 일본의 가족 제도가 합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반면 여성이 이혼 후 6개월 이내에 재혼하지 못하게 한 민법 조항은 위헌 판정을 받았다. 일본 양성평등에서 ‘절반의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6일 부부가 서로 다른 성을 쓰지 못하게 한 민법 750조에 대해 “정체성이 손상된다는 견해도 있지만, 옛 성을 통명(비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으로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다”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는 도쿄(東京) 등에 거주하는 남녀 5명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총 600만 엔(약 5800만 원)의 국가 배상을 요구한 것에 따른 판결이다.

현재 일본 민법은 결혼 후 부부 중 하나의 성을 선택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결혼한 여성의 96%가 남편의 성을 선택하고 있다. 1898년 시행된 메이지 민법에서 도입된 이 제도 때문에 결혼한 여성은 운전면허증, 여권, 신용카드 등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바꿔야 했고 정체성에도 혼란을 겪어 왔다. 여성이 회사에 근무할 때나 거래처와의 관계 등에서도 혼란이 생겼다. 이 때문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 민법의 해당 조항을 ‘차별’이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일본은 한 때 미국과 유럽처럼 원하면 별도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보수 세력의 반발로 무산됐다. 다만 이번에 최고재판소가 “부부 별성은 국회에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혀 법률 개정 논의가 시작될지 주목된다.

한편 이혼한 여성이 6개월 동안 재혼하지 못하게 한 민법 733조는 위헌 판결을 받았다. 최고재판소는 “재혼 금지기간 가운데 100일을 초과하는 부분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가정 폭력 때문에 이혼한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의 여성이 2011년 ‘남녀평등을 보장한 헌법에 어긋난다’며 165만 엔(약 1600만 원)의 배상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일본 남성은 재혼 금지 기간이 없다. 한국 민법도 과거 비슷한 취지로 6개월 재혼 금지 조항을 뒀으나 2005년 삭제됐다.

해당 조항은 누가 아버지인지를 둘러싼 다툼을 막기 위해 1898년 메이지 민법에서 도입됐으나 현재 유전자 감정으로 간단하게 친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된 만큼 국가의 불필요한 간섭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2심 법원에서는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두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미리 막겠다는 법의 목적에 합리성이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었다.

해당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일본 법무부는 이혼 후 100일이 지난 여성의 재혼을 허용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할 방침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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