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카다피 등 고객…세기의 뚜쟁이 ‘마담 클로드’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3일 17시 38분


20세기 가장 유명한 뚜쟁이였던 ‘마담 클로드’가 19일 지중해 휴양지 프랑스 니스에서 오랜 투병생활 끝에 92세로 숨졌다고 프랑스와 영국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본명이 페르낭드 그뤼데인 마담 클로드는 2차대전이 끝난 뒤 콜걸 생활을 하다가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그의 자서전(1994년)에서 밝혔다. “사람들이 언제나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음식과 섹스. 그런데 나는 요리엔 재주가 없었다.”

그는 남성들이 ‘가슴골 깊은 이국적 창녀’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하고 1961년부터 파리 샹젤리제 인근에 초호화 비밀 매음굴을 열었다. 이후 하룻밤 화대가 최소 1000달러 이상을 줘야하는 고급 윤락녀를 500여 명이나 고용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마담 클로드는 주로 패션모델과 명문대 여대생 출신 중에서 얼굴과 몸매에 지성까지 3박자를 갖춘 여성을 선발했다. 그는 “한달에 20명가량의 자원자가 오면 그중에 1명만 뽑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뽑힌 여성들에게 철학과 외국어를 가르치고 필요할 경우 성형수술까지 시켜줬다. 마담 클로드는 그 대가로 화대의 30%를 챙겼다.

비밀엄수를 중시한 마담 클로드는 평생 고객의 명단을 직접 언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비공개 자서전을 집필한 윌리엄 스태디엄에 따르면 그 명단에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그리스의 선박왕 오아시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팔레비 전 이란 국왕, 지오바니 아그넬리 피아트 그룹 회장,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 그리고 당시 프랑스 내각의 절반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그에게 “재키(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닮았지만 뜨거운(hot) 여자”를 요구했고 케네디 사후 재키의 두 번째 남편이 될 오아시스는 마담 클로드조차 얼굴을 붉히게 만든 외설적 요구를 했다고 한다.

마담 클로드는 자신의 사업을 통해 얻은 정보를 프랑스 경찰에 제공해줬고 그 대가로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1974년 보수적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녀의 전성기도 끝났다. 1976년 탈세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그는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착각해 1984년 귀국했다가 5개월간 철창신세를 져야했다.

그녀의 사업은 몰락했지만 그녀의 이름은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1977년 엠마뉘엘 시리즈의 쥐스트 자캥 감독이 영화 ‘마담 클로드’라는 영화를 만든 뒤 그녀의 이름을 딴 섹스상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아 한동안 그녀와 함께 생활했던 프랑스 여배우 프랑수아 파비앙은 “남자는 지갑, 여자는 구멍으로만 보는 끔찍한 여자”라고 그녀를 비난했다. 1992년 매춘 알선 혐의로 다시 기소돼 5년형을 살고 나온 마담 클로드는 프랑스 남부 니스의 소형 아파트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며 조용한 말년을 보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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